노노(老老 )케어

간병 인력 부족, 노노(老老)케어를 가속화하다: 돌봄 난민의 위기

idea250625 2025. 6. 26. 14:39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돌봄, 어디로 가야 하나

2025년 현재, 한국 사회는 누구나 ‘돌봄 위기’라는 말을 체감하며 살고 있다.
부모의 치매, 배우자의 거동 불편, 독거노인의 병원 진료 동행 등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은 더 이상 특정한 계층이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돌봄을 ‘누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아직도 명확한 답이 없다.
요양시설은 포화 상태고, 전문 간병 인력은 부족하며,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제도 역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이른바 ‘돌봄 난민’이 사회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노노(老老)케어, 즉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간병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자조적 돌봄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지만, 이 구조가 제대로 된 제도화 없이 가속화될 경우,
사회 전체가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간병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위기가 어떻게 노노(老老)케어를 확산시키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돌봄 공백이 발생하며, 돌봄 난민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해보고, 지속 가능한 대응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간병 인력 부족과 노노(老老)케어

 

간병 인력 부족의 원인: 시스템은 있으나 사람이 없다

노인 돌봄 체계의 핵심 중 하나는 전문 간병 인력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이 간병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24년 기준, 활동 중인 요양보호사는 약 55만 명이지만, 실제로 장기근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5년 이상 종사 비율은 20% 미만이며, 초고령화 사회를 감당하기에는 공급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열악한 노동 조건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 야간 돌봄, 환자 이동 등 고강도 노동을 수행하지만, 평균 급여는 월 180만 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게다가 간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원, 정서적 스트레스, 감정노동은 직업 만족도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린다.

두 번째 원인은 직업 인식의 낮음이다.
간병이라는 직종은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저평가되고 있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 결과, 청년층은 물론 중장년층에서도 유입이 적고, 간병 인력은 고령 여성 위주로 편중되어 있다.

세 번째는 제도적 한계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더라도 활동처가 부족하거나 행정 절차가 복잡해 자격증은 있으나 활동하지 않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
또한 방문요양, 병원 간병, 재가요양 등 돌봄의 형태가 분산되어 있어 인력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요소는 돌봄 수요는 폭증하는데, 이를 감당할 사람은 없는 구조를 만든다.
이 간극 속에서 ‘누군가는’ 그 자리를 채워야 하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노노(老老)케어다.

 

돌봄 난민: 공공도 민간도 책임지지 않는 경계선의 사람들

돌봄 난민은 말 그대로 공공 복지 체계에서도, 가족 내 돌봄 체계에서도 벗어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돌봄이 필요하지만, 그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자격 요건이나 재정 여건, 가족 지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기요양등급 탈락 노인이다.
심신 기능 저하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등급에서 탈락하면 어떠한 공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가족에게 전적인 간병 부담이 전가된다.
그러나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돌봄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면 해당 노인은 제도 밖에서 방치되거나, 혼자 일상을 감당해야 하는 위험한 상태에 놓인다.

또 다른 유형은 중증 환자의 가족 간병인이다.
의료보험은 적용되지만, 하루 24시간 필요한 간병을 직접 감당해야 하는 가족은 자신의 건강, 직업, 사회관계를 모두 포기하고
간병 노동에만 매달려야 한다.
이들 역시 돌봄 난민이다.
돌봄이 '제공되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공하는 과정에서 무너져버리는 사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4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중 약 42만 명이 '가족 외에는 일상생활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답했으며, 이 중 60%는 스스로를 “사실상 돌봄 난민 상태”라고 인식했다.

이처럼 돌봄 난민은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도의 공백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회적 계층이다.

 

노노(老老)케어의 확산 – 간병 공백을 메우는 자조적 돌봄 구조

간병 인력 부족이 심화되면서, 지자체와 복지기관은 돌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노노케어 확대에 나서고 있다.
노노(老老)케어는 건강한 고령자가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를 직접 방문하여 말벗, 안부 확인, 생활 점검 등을 수행하는 상호 돌봄 모델이다.
이러한 구조는 시설이나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한된 행정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고령자에게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라북도, 서울특별시, 충청남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노노케어는 이미 제도화되어 정기적인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이웃돌봄활동가’ 제도를 통해 65세 이상 고령자 중 일정 기준을 충족한 사람들을 선발하고, 기초 건강검진과 16시간 이상의 돌봄 교육을 수료한 뒤 활동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은 주 2~3회, 하루 2시간 정도 정해진 대상 가정을 방문해 식사 상태 확인, 약 복용 점검, 기본 위생 상태 체크, 위험 요소 모니터링 등 정서적·생활적 돌봄을 제공한다.

이처럼 노노케어는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실제 돌봄 효과를 일정 부분 거두고 있다.
서울시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노노케어 참여 어르신 중 우울감 지수가 평균 18% 낮아졌고, 활동자가 위기 상황을 조기에 감지한 건수는 전년 대비 약 1.7배 증가했다.
이러한 지표는 단순한 정서 지원을 넘어서, 지역사회 내 고령자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간병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돌봄의 책임을 또 다른 고령자에게 넘기는 방식이 제대로 된 정책적 논의 없이 확대될 경우, 고령자 간 돌봄이 국가 복지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왜곡될 위험이 있다.
특히 돌봄 제공자 본인도 장기적으로 신체적·정서적 부담을 감당하게 되면, 결국 돌보는 사람조차 새로운 형태의 돌봄 위기 대상, 즉 ‘잠재적 돌봄 난민’이 될 수 있다.

노노(老老)케어는 분명 간병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구조이지만, 이 모델이 복지 책임의 대안으로 기능하려면 돌보는 사람에 대한 제도적 보호와 돌봄의 질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노노(老老)케어의 한계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노노케어는 분명히 간병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이고 보완적인 모델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구조적 간병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 노노케어만 앞세우는 방식은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정책적 도피처로 기능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간병 인력 양성과 관리의 국가 책임 강화다.
요양보호사 양성체계의 개편, 처우 개선, 직무 전환 훈련 확대 등을 통해 전문 간병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돌봄 난민 실태조사와 등록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는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관리체계가 없다.
지자체 차원에서 돌봄 위기군을 파악하고 적절한 돌봄 서비스, 상담, 응급 대응이 연계될 수 있는 지역 기반 플랫폼이 필요하다.

셋째, 노노(老老)케어 활동자에 대한 보호체계 정비도 필수다.
활동자는 단순한 ‘봉사자’가 아니라, 사회 복지 노동자로서 인정되어야 하며, 심리상담, 감정 소진 예방 교육, 활동 이력 인정과 연금 가점 등 제도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노(老老)케어를 ‘간병의 대체제’가 아닌, 관계 회복 기반의 상호돌봄 모델로 설계해야 한다.
즉, 단순히 인력 부족을 메우는 수단이 아닌 고령자가 사회와 연결되어 삶의 의미를 유지하는 존엄 기반 복지 전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사회적 의지’다

간병 인력 부족은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 뿌리에는 복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 돌봄 노동의 저평가, 그리고 노인의 돌봄을 노인 스스로 감당하게 만드는 사회적 관성이 존재한다.

노노(老老)케어는 분명히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러나 그것이 복지 체계의 중심이 되는 순간, 우리는 돌봄을 공동체가 아닌 개인에게 떠맡기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이제는 돌봄을 ‘누가 하느냐’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함께 책임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고령사회가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돌봄을 연결하는 제도, 돌보는 사람을 보호하는 정책, 그리고 돌봄 자체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