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 )케어

한국과 일본의 노노(老老)케어 비교: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idea250625 2025. 6. 27. 02:22

고령화의 경로는 같지만, 준비 속도는 다르다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개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이제 돌봄의 주체는 꼭 젊은 가족이 아니며,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국가에서는 노노(老老)케어가 중요한 복지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가족 돌봄의 붕괴와 독거노인 문제를 겪으며, 공공 주도의 돌봄 체계를 지역 기반으로 전환할 필요성에 직면했고,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노노(老老)케어를 포함한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이다.
한국은 비교적 최근에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요양시설 부족, 가족 해체, 간병 인력 위기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노노(老老)케어를 ‘돌봄 공백의 실질적 보완책’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두 나라는 모두 고령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돌봄을 바라보는 시선, 제도 설계의 방향, 지역사회 참여 구조는 매우 다르다.
이 글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노노케어 정책을 중심으로 제도 운영 방식, 고령자 돌봄 인프라, 사회문화적 인식의 차이를 비교하고, 현재 한국의 위치는 어디쯤 와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본다.

한국과 일본의 노노(老老)케어

일본의 고령사회 대응: 지역 포괄 케어와 노노(老老)케어의 제도화

일본은 2000년 ‘개호보험(介護保険,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면서 전국적 차원에서 노인 돌봄의 공공 책임화를 추진했다.
그중 핵심은 지역 밀착형 복지 체계인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地域包括ケアシステム)이다.
이 시스템은 ‘의료·요양·예방·생활지원·주거’ 다섯 요소를 한 지역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해 고령자가 지역에서 노후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노노케어는 이 지역 포괄 케어 안에서 자원봉사 중심 또는 유급 활동자 중심으로 구성된 ‘고령자 간 상호 지원 구조’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생활지원 코디네이터 제도'이다.
이 제도는 65세 이상 건강한 노인을 선발해 지역 내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 가정에 방문하여 말벗, 건강 체크, 생활 점검, 심부름 등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를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닌 ‘사회참여형 돌봄 노동’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참여자에게 일정한 포인트 지급과 건강관리, 정기 교육 등의 혜택도 제공한다.

무엇보다 일본은 제도화의 깊이가 다르다.
고령자 인구가 많은 지자체에는 노노(老老)케어 전담 예산과 행정 인력이 배치되어 있으며, 활동가-수혜자 매칭 시스템, 응급 상황 알림 시스템, 커뮤니티 기반 정서지원 체계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즉, 일본은 노노(老老)케어를 일시적 보완책이 아니라, 고령사회 복지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한국의 현재: 제도 도입 초기, 지역별 실험 단계에 머물다

한국 역시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노노(老老)케어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서울시, 전라북도, 충청남도 등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범사업 또는 자체 프로그램 형태로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이웃돌봄활동가’, 전북의 ‘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 연계형 노노(老老)케어’, 충남의 ‘이웃사촌 돌봄’ 모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건강한 고령자를 선발해 교육 후 활동 자격을 부여하고, 주 2~3회 돌봄이 필요한 노인가정을 방문해 정서적·생활적 지원을 제공한다.

하지만 아직도 이 제도들은 지자체의 자율 사업이거나 국비 보조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전국적인 표준화나 법적 제도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활동자에게 제공되는 보상 역시 활동비 명목의 한시적 수당이며, 직업적 정체성이나 장기 지속 가능성에 대한 보장은 부족하다.
이로 인해 활동자 간 역량 차이, 관계 피로, 돌봄의 지속성 문제 등 여러 현장 과제들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가?’라는 인식에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일각에서는 '국가가 해야 할 돌봄을 노인에게 떠넘긴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이 노노케어를 도입하고 있으나, 제도화 이전의 실험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역 포괄 케어 vs. 커뮤니티케어: 구조적 차이의 핵심

일본의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과 한국이 시범 도입 중인 커뮤니티케어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지만, 구조적 깊이에서 차이가 크다.

일본은 지역 포괄 케어를 의료·복지·주거·예방·돌봄을 하나의 지역 행정단위 안에서 완결 가능하도록 설계했으며, 이 시스템은 중앙정부의 장기 정책, 지방정부의 인력 배치, 민간 네트워크의 참여까지 법적으로 뒷받침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커뮤니티케어는 아직도 돌봄을 의료와 분리된 구조로 보고 있으며, 복지와 보건, 주거가 통합되지 않은 채 부처 간, 기관 간 분절화된 상태에 있다.
이는 돌봄의 책임이 여전히 가정이나 비공식 노동에 전가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일본은 노노(老老)케어를 노인 자원봉사의 한 축으로 분류하여 자발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제도화했지만, 한국은 아직 이를 노인일자리사업이나 단기 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속성, 전문성, 활동 동기 관리에 있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즉, 두 나라의 돌봄 정책은 표현은 비슷하지만, 시스템 설계의 깊이와 연계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제도 설계와 실행의 문화적 차이: 인식, 책임, 연대의 틈

일본이 노노(老老)케어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특징은 ‘공공이 기본 틀을 잡고, 주민 참여는 그 위에서 작동한다’는 원칙이다.
중앙정부가 돌봄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주민은 자발적 참여자이자 감시자, 돌봄의 동반자로 기능한다.

반면, 한국은 자발적 참여를 ‘복지의 대체재’처럼 기대하거나, 지역주민의 참여를 ‘공공서비스 부족의 보완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참여자에게 책임은 지워지되, 보상, 관리, 지속성은 뒷받침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일본은 고령자 자원봉사에 대해 ‘노후 사회참여’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적 인정이 강하다.
활동한 만큼 포인트를 적립하고, 이를 의료비나 공공 서비스로 환급받는 구조도 마련되어 있다.
즉, 돌봄 참여 = 사회 기여 → 사회적 보상이라는 공식이 정착된 것이다.

한국은 아직 노노케어 참여자에 대해 '좋은 일을 하는 어르신', '고마운 노인'이라는 도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런 인식은 정서적으로는 따뜻하지만, 제도적 지속성과 정책적 추진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일본의 20년, 한국의 지금,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노노(老老)케어는 단순히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실천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초고령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계약과 제도적 철학의 문제다.

일본은 그 질문에 이미 20년 전부터 답을 준비했고, 지역 중심의 복합 돌봄 시스템 속에서 노노케어를 핵심 돌봄 모델로 정착시켰다.

반면 한국은 이제 막 논의를 시작했고, 여전히 제도화, 예산, 참여자 보호,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 여러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지금 우리는 단지 일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형 노노(老老)케어 모델이 어떤 가치와 철학을 담아야 하는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돌봄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다.
이제 한국은 노노(老老)케어를 ‘좋은 시도’로 끝낼 것인지, ‘지속 가능한 복지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