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늙는 사회’에서 돌봄은 누구의 몫인가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의 약 23%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처럼 인구구조가 빠르게 고령화됨에 따라 가장 먼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분야가 바로 일상 돌봄 체계다.
과거에는 자녀가 부모를 돌보거나, 가족 내에서 돌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1~2인 고령가구의 증가, 자녀 세대의 독립,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등으로 가정 돌봄의 기능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병원, 요양시설, 재가 요양 서비스 등 공공 돌봄 인프라 역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간병 인력의 구조적 부족과 지역 간 불균형은 고령자의 일상 돌봄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돌봄 모델이 바로 노노(老老)케어, 즉 노인이 다른 노인을 돌보는 구조다.
이 제도는 처음에는 지역 내 취약 고령자의 안부를 확인하는 자원봉사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여러 지자체에서 공식적인 돌봄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대안적인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노노케어의 개념을 분명히 정리하고, 현재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왜 지금 이 제도가 필요한지, 그리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 어떤 보완이 필요한지를 체계적으로 살펴본다.

노노(老老)케어란 무엇인가 – 개념과 등장 배경
노노(老老)케어는 한마디로 말하면, 비교적 건강한 고령자가 돌봄이 필요한 또 다른 고령자를 지원하는 상호 돌봄 시스템이다.
이 개념은 일본에서 먼저 체계화되었으며,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일본이 돌봄 인력 부족과 가족 해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 기반의 자조적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면서도, 돌봄에 대한 제도적 준비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 노노(老老)케어가 자연스럽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이웃 어르신이 돌보는 경로당 중심의 관계 회복 활동’이나 ‘말벗·심부름·생활 지원’ 수준의 단순한 활동이었지만, 이제는 정기 방문, 위기 감지, 돌봄 사후 보고 등 반(半)전문화된 복지 프로그램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노케어는 단순한 봉사 개념이 아니다.
고령자 스스로가 돌봄의 주체가 되어 활동하며, 이를 통해 돌봄의 수요와 공급을 모두 고령자 내부에서 해결하는 돌봄의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출발점은 복잡한 행정 체계를 거치지 않고, 지역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지역 공동체형 모델이다.
이는 제도의 기민한 작동이 어려운 고령자 복지 현실에서 가장 민첩하고 유연한 대응 방식이 될 수 있다.
현장에서 작동하는 노노(老老)케어 –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노노케어는 현재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의 ‘이웃돌봄활동가’, 전북의 ‘노노케어 시범사업’, 충청남도의 ‘이웃사촌 돌봄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의 경우, 65세 이상 어르신 중 건강검진을 통과하고 16시간 이상의 교육을 수료한 이들을 ‘이웃돌봄활동가’로 선발한다.
이들은 주 3회 이상 독거노인이나 돌봄 취약 고령자 가정을 방문하여 식사 여부 확인, 약 복용 체크, 말벗, 위험 요소 파악 등
기초적인 일상 돌봄을 수행한다.
전라북도는 사회서비스형 노인일자리와 연계한 노노(老老)케어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활동자에게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하며, 정기적인 심리상담과 건강검진을 통해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업을 통해 1년 이상 돌봄을 받은 고령자의 우울감 지수는 평균 15% 이상 낮아졌으며, 위기 상황 조기 발견률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노노(老老)케어가 단순히 ‘좋은 마음을 가진 어르신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제도 아래에서 효과적인 돌봄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현장에서 활동 중인 고령 활동자들도 “다시 사회와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자존감을 회복했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서적 회복은 단지 수혜자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에게도 복지 효과가 미치는 구조임을 의미한다.
노노(老老)케어의 장점 – 돌봄의 구조를 바꾸는 새로운 틀
노노(老老)케어는 단순한 돌봄 제공을 넘어서, 기존의 복지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장점을 가진다.
첫 번째 장점은 즉시성이다.
지역 내에 이미 존재하는 고령자가 활동자로 참여하기 때문에 복잡한 행정 절차나 서비스 전달 구조 없이도 빠르게 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특히 오지, 농어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 돌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두 번째는 정서적 안정성이다.
같은 연령대이자 비슷한 인생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이루어지는 돌봄은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낮고, 감정의 유대감이 강하다.
이는 돌봄 수혜자의 심리적 안정을 도울 뿐 아니라, 돌봄을 받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수치심’을 줄여준다.
세 번째는 사회참여의 기회 확대다.
노년기에 사회적 역할이 사라진 사람에게 노노(老老)케어 활동은 새로운 ‘소속감’과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고령자의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장기적으로는 의료비 절감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노노(老老)케어는 복지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고령자가 서로의 삶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연결되는 새로운 돌봄 구조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미래형 복지 패러다임의 핵심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노노(老老)케어의 한계와 미래를 위한 과제
그러나 노노케어가 만능은 아니다.
실제 운영 과정에서 여러 한계와 개선 과제도 존재한다.
우선, 돌보는 고령자도 결국은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점이다.
활동자의 연령이 65세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속적인 활동은 건강 문제, 감정 소진, 대인관계 피로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기 건강 검진, 심리상담, 관계 교육 등 활동자 보호 시스템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노노케어 활동의 질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표준화된 교육과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지금은 지자체마다 운영 기준이 달라 지역 간 서비스 편차가 크고, 돌봄 품질에 일관성이 없다.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제정과 모델 표준화 작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제도를 단순한 비용 절감 도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노노(老老)케어가 확산될수록 정부가 복지 책임을 고령자 간 자조 구조로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보완적 역할’에 머물 것이냐, ‘복지 구조의 한 축’으로 성장시킬 것이냐에 대한 정책적 철학이 분명히 정립돼야 한다.
노노(老老)케어는 선택이 아니라, 방향이다
노노(老老)케어는 단순한 돌봄 방식이 아니라, 초고령 사회에서 돌봄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응답이다.
기존 시스템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이 제도는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구조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돌봄의 질을 유지하며, 고령자의 사회참여를 촉진하는 복합적 효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구조가 진정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비, 활동자 보호, 돌봄 철학의 확립이 필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을 가족이나 개인의 헌신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노노케어는 더 이상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이제는 그것을 지속 가능한 복지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 해답은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노노(老老 )케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령의 부모님을 돌보는 고령의 자식들, 노노(老老)케어 가족 사례 분석 (0) | 2025.06.27 |
---|---|
실제 노노(老老)케어 현장 기록: 돌보는 노인과 돌봄 받는 노인의 이야기 (1) | 2025.06.27 |
한국과 일본의 노노(老老)케어 비교: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0) | 2025.06.27 |
간병 인력 부족, 노노(老老)케어를 가속화하다: 돌봄 난민의 위기 (0) | 2025.06.26 |
노노(老老)케어 제도가 필요한 이유: 초고령 사회의 대안 (1)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