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 )케어

고령의 부모님을 돌보는 고령의 자식들, 노노(老老)케어 가족 사례 분석

idea250625 2025. 6. 27. 16:35

‘노노(老老)케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를 넘어 고령 돌봄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는 시기에 있다.
노인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가족의 부양 기능은 약화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변화는, 돌봄의 주체가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자녀 역시 60대, 70대인 고령 상태에서 부모를 간병하거나 돌보는 상황이 흔해졌다.

 

노노(老老)케어 가족 사례


이처럼 고령의 자녀가 고령의 부모를 돌보는 구조는 현실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복지제도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이 상황을 ‘예외적인 현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노노(老老)케어는 보통 건강한 노인이 다른 노인을 돌보는 지역 복지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적인 노노(老老)케어, 특히 고령 자식이 고령 부모를 전적으로 부양하는 구조는 공식 제도 밖에서 이루어지는 감춰진 복지 노동이다.

이 글에서는 고령의 부모를 돌보는 고령 자식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가족 내 노노케어가 어떤 현실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어떤 구조적 문제와 제도적 사각지대를 안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본다.

 

사례로 보는 현실 – 고령 자식이 고령 부모를 돌보는 구조

서울 송파구에 사는 68세 장모 씨는 올해 92세가 된 어머니를 8년째 돌보고 있다.
장 씨는 정년퇴직 후 별다른 수입 없이 국민연금으로 어머니의 생활비와 간병비를 감당하고 있다.

어머니는 중풍 후유증으로 거동이 어렵고,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장 씨는 하루에도 수차례 기저귀를 갈고, 죽을 끓이며, 휠체어에 태워 병원을 오가야 한다.
본인도 협심증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 중이고, 무릎 관절에 퇴행성 변화가 있어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내가 무너지면 끝이에요”라며 자신의 건강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간병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 내 노노케어는 형식상 가족 돌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기 간병 노동에 해당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이 돌봄은 요양보호사도 아니고, 공식 복지 대상자도 아니기 때문에 수당, 휴식, 심리 상담, 정서적 지원 등 그 어떤 보상이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장 씨는 말한다.
“남들은 내가 효자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냥 버티는 거예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할 수가 없어서 하는 거예요.”

이는 ‘노노(老老)케어’라는 개념이 현실에서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돌봄 구조의 복합적 부담 – 신체적·경제적·정서적 삼중고

가족 내 노노(老老)케어는 단순한 정서적 헌신만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이 구조는 신체적 한계, 경제적 부담, 정서적 고립이라는 3중의 압박을 동시에 가져오기 때문이다.

먼저, 신체적 부담은 매우 직접적이다.
고령의 자녀 역시 퇴행성 질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관절염, 고혈압, 당뇨, 시력 저하, 허리 통증 등 고령자에게 흔한 질환이 돌봄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하지만 이들은 간병 과정에서 자신의 증상을 무시하고, ‘나보다 부모가 더 아프니까’라는 감정에 자신을 소모한다.

두 번째는 경제적 부담이다.
고령 자녀가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사회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본인의 노후 대비는 멈춰지고, 이미 퇴직 후 불안정한 소득 상태에서 부모의 의료비·생계비까지 떠안게 되는 구조가 된다.
간병인을 고용할 여유가 없는 경우, 자녀는 모든 간병을 전담하면서 재정적 위기까지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은 정서적 고립과 소진이다.
간병은 타인과의 교류를 차단시키고,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게 만드는 작업이다.
특히 고령의 자녀는 사회적으로 ‘당연히 부모를 돌보는 것이 옳다’는 인식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이기적인 행동’으로 여겨 자책하게 된다.

실제로 가족 간병자 10명 중 7명이 “간병 중 감정을 표현하거나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는 복지부 자료는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즉, 가족 내 노노케어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 위험하며, 정서적으로 고립된 구조라는 것이다.

 

제도가 놓치고 있는 대상 – 가족 간병자라는 보이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

한국의 노인복지제도는 장기요양보험, 기초연금, 방문요양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대부분 돌봄을 ‘받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실제 현장에서 간병을 수행하는 가족 간병자, 특히 고령의 자식은 제도의 외곽에 머물고 있다.

고령 부모가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그 시간은 하루 중 1~2시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머지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돌봄은 자녀나 배우자 등 가족이 전담하게 되며, 이 구조가 지속되면 가족은 자연스럽게 사적 간병자로 기능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어떠한 공적 지원도 주어지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간병 수당이나 휴식 지원, 정서 상담, 건강관리 등 공식적인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병 행위는 일상에서 반복되며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지만, 행정상으로는 ‘돌봄을 제공한 사실’조차 기록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가족 간병자가 공식 복지 시스템의 인식 밖에 놓여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 결과, 고령의 자식은 간병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복지 대상자가 아닌 비공식 수행자로 남게 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가족 간병자의 정서 소진 예방을 위한 ‘간병 힐링 프로그램’이나 ‘간헐적 휴식 지원 시범사업’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전국적으로 확산된 제도는 아니다.
또한 지자체 간 제도 수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정작 가장 고립된 가족 간병자는 그 존재조차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금의 복지체계는 가족이 돌보는 구조를 ‘은연중에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의 건강, 감정, 소득, 삶의 질은 사회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가족 돌봄을 위한 제도적 전환

가족 내 노노(老老)케어가 지속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발성 기반 복지 모델’에서 벗어나 ‘제도적 인식 기반의 보호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가족 간병자 등록제도’의 도입이다.
고령의 부모를 일정 기간 이상 전담 간병하고 있는 고령 자녀는 지역복지센터에 등록해 정기적인 건강 상태 체크, 심리상담, 활동수당, 간헐적 휴식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효도’의 보상 개념이 아니라, 사회 복지의 일부로서 간병을 관리하겠다는 인식 전환이다.

두 번째는 가족 돌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노인뿐 아니라, 그들을 돌보는 가족의 건강, 정서, 소진 정도도 데이터로 추적하고, 위기 신호 발생 시 공공 서비스가 즉시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고령 간병자 지원 전담팀 설치다.
각 시군구에 ‘가족 간병자 지원담당자’를 배치하고, 상담·신청·휴식 연계·정보 안내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잡한 신청 절차, 정보 부족, 행정 피로를 줄이기 위한 전담 행정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족 돌봄의 심리적 회복을 위한 정서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돌봄은 끝나도, 그 여운은 오래간다.
부모를 수년간 간병한 후 상실을 경험하는 고령 자녀에게는 우울감, 무기력, 사회적 고립이 깊게 남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애도 상담, 커뮤니티 재연결, 사회적 자아 회복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돌봄의 주체도, 제도의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한다

노노케어는 단순히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개념이 아니다.
그 안에는 돌봄을 수행하는 고령자의 노동과 감정, 건강과 고립이 함께 존재한다.
특히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고령 자식의 간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더 이상 비공식적인 헌신으로만 남겨두기에는 너무 위태롭다.

이제는 제도가 묻고, 기록해야 한다.
“누가 돌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돌봄은 어떤 조건에서 지속되고 있는가?”

진정한 복지는 돌봄을 받는 사람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까지 함께 지켜주는 것이다.
노노(老老)케어가 지속 가능한 복지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돌보는 이들의 무게도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