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늙어가는 시대, 새로운 가족이 필요하다
2025년 대한민국,
‘가족’이라는 말이 예전만큼 익숙하지 않다.
홀로 사는 노인의 비율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1인 가구는 이미 전체 노인가구의 40%를 넘어섰고,
‘가족 안의 돌봄’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실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노노(老老)케어, 즉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구조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노(老老)케어는
고령 부부나 형제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비공식 돌봄에 머물고 있으며,
피로와 부담, 고립과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가족이 아니라도, 돌봄이 가능한 관계’를 만드는 것.
바로 지역사회 기반의 노노케어 모델이 그런 실험이다.
이 구조는 기존의 개인 중심 돌봄을
이웃, 동네, 커뮤니티가 나누어 갖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공동체 기반 노노(老老)케어 사례를 중심으로
그 가능성과 한계, 사회적 의미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정말로 지역사회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돌봄의 벽을 넘는 마을: 광주의 ‘이웃이 되어줘서 고마워요’ 프로젝트
광주 북구에서는 2023년부터
‘이웃이 되어줘서 고마워요’라는 이름의
노노(老老)케어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지역 복지관과 주민센터, 자원봉사단체가 협력해
건강한 고령자를 ‘마을 돌봄 파트너’로 양성하고,
인근의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와 연결하는 구조다.
프로젝트 참여자는 사전 건강검진과 간단한 교육을 받고,
일주일에 2~3회, 가까운 이웃집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함께 산책하거나, 말벗이 되어주는 활동을 한다.
돌봄의 핵심은 단순한 간병이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관계의 연결에 있다.
활동자 박 아무개 씨(71)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돌보러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면 내가 더 살아 있어지는 기분이에요.
그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나도 다시 누군가의 이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더라고요.”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돌봄의 수혜자와 제공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호 돌봄의 관계를 만드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고령자 역시 정서적으로 치유되고,
사회적 역할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사업은 지자체의 복지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 가능성도 높다고 하겠다.
2024년에는 시범 운영 6개 동에서 15개 동으로 확대되었고,
고령자 커뮤니티 활성화와 고독사 예방 효과도 나타났다.
1인가구 중심의 도시형 노노(老老)케어: 서울 성북구의 사례
서울 성북구는 고령자 1인가구 비율이 서울시 평균보다 높다.
이에 따라 성북구는 도시형 노노(老老)케어 실험을 선제적으로 시도했다.
2024년 성북구청은 ‘생활 돌봄지원단’이라는 이름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제도는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7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근거리 고령자 활동자와 정기적 매칭을 수행하는 구조다.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복지관 및 건강센터와 연계
- 활동자는 65~72세의 비교적 건강한 노인
- 1명당 2~3가구 매칭
- 안부 확인, 심리정서 대화, 병원 동행, 행정 지원 등
- 월 30시간 이내 활동, 활동비 제공
특히 이 사업은 기존의 공공일자리 방식과 달리,
고령자들이 스스로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하는
‘마을 복지 자율 구조’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성북구는 2025년부터 이 사업을 노인일자리센터와 통합 운영해
‘노노케어 마을단’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고령자 간 연결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관계 회복과 마을의 회복력까지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동체 기반 노노(老老)케어의 장점과 한계
이처럼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는 공동체 기반 노노(老老)케어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고령자가 돌봄 수혜자에서
돌봄 제공자로 전환됨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회복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고령자의 자존감과 삶의 의욕을 높인다.
둘째, 돌봄 대상자도
가족이 없더라도 정기적인 사회적 접촉을 경험하게 되며,
정서적 고립과 우울감을 완화할 수 있다.
이는 치매 예방, 건강 관리, 고독사 방지 효과로 이어진다.
셋째, 복지재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문 간병 인력을 모두 배치하는 것보다
경미한 일상 돌봄을 커뮤니티가 분담함으로써
전체 사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점도 존재한다.
고령자 활동자에 대한 안전 보호 장치가 미비하고
돌봄이 감정적인 부담으로 확대될 위험을 갖고 있다.
또한 교육과 매칭 그리고 중재 과정에 전문적 인력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행정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겠다.
즉, 자발적 활동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공공 제도와 중간지원조직이 함께 설계·운영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족이 아닌 돌봄의 연결망, 제도화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가족이 아니면 돌볼 수 없다’는 전제에서
‘가족이 아니어도 돌봄은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공동체 기반 노노(老老)케어는 그 전환의 시작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 모델을 더욱 안정화하고
제도화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노노케어 활동자 인증제’ 도입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고 교육을 수료한 고령자에게는
‘노노케어 활동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활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해 상해보험, 정기 건강검진,
심리상담, 돌봄소진 예방 프로그램 등이 함께 운영되어야 하며,
장기 활동자를 위한 휴식 제도도 필요하다.
‘마을 단위 돌봄 매니저’ 배치
활동을 현장에서 지원하고 조율하기 위해서는
마을 단위에 ‘돌봄 코디네이터’나 ‘지역 돌봄 매니저’가 상시 배치되어야 한다.
이들은 활동자의 일정 관리, 수혜자와의 매칭, 갈등 중재, 돌봄 품질 모니터링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지역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자원봉사센터 등과
연계된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작동하게 된다.
이를 통해 돌봄 관계가 개인 간 비공식적 네트워크에 그치지 않고,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관리되는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지역 통합돌봄 서비스와 연계
공동체 기반 노노(老老)케어를
기존의 복지 서비스와 연계하는 작업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방문 건강관리, 응급안전알림, 치매안심센터, 방문요양 등
기존의 노인복지 인프라와 연결함으로써 돌봄의 연속성과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고령자가 긴급 상황에 빠졌을 때 즉시 연계가 가능한 시스템,
혹은 활동자의 보고를 통해 돌봄 대상자의 상태를 조기에 인지할 수 있는 체계는
돌봄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한 예산 편성
무엇보다 이 모든 구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행정적·재정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노(老老)케어 활동자는 단순한 봉사자가 아닌
지역사회의 돌봄 인력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일정 수준의 수당 지급, 교육비와 운영비 보조, 활동비 정산 등
예산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예산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하고,
운영은 공공과 민간 복지기관이 협력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공동체 기반의 노노케어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자발적 돌봄’을 넘어서 ‘사회적 인프라’로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족이 돌봄을 책임질 수 없는 시대,
새로운 돌봄 관계는 지역 안에서 자라고 제도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가족이 아니어도 돌봄은 가능하고,
그 가능성은 준비된 제도 속에서 실현될 수 있다.
가족은 사라질 수 있어도, 돌봄은 사라지면 안 된다
가족 없는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돌봄 관계를 찾아야 한다.
혈연이 아닌 돌봄,
지시가 아닌 공감,
의무가 아닌 연대의 관계.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 기반 노노(老老)케어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고,
노인이 노인을 이해하며,
지역사회가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주는 구조.
이것은 단지 복지의 문제를 넘어서,
어떤 사회가 존엄을 지키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찾아와 “괜찮으세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생명을 살리고,
삶을 지키고,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
가족은 사라질 수 있어도
돌봄은 결코 사라지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돌봄은, 이제
지역사회가 나누어야 할 책임이자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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