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 )케어

노노(老老)케어, 더 이상 숨기지 마세요: 사회적 관심과 지지 요청

idea250625 2025. 7. 3. 12:28

돌봄이 부끄러움이 되어버린 사회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본 지 벌써 6년째예요.
정작 저희 형제는, 부모님이 그렇게 고생하시는 걸 뒤늦게 알았죠.”

이런 고백은 단지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곳곳에서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老老)케어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현실은 사회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돌보는 노인은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라며 참고,
돌봄을 받는 노인은 “내가 짐이 되었다”는 죄책감 속에 조용히 침묵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조차 그 상황을 ‘개인적인 문제’로 넘기기 일쑤다.
그 결과, 노노케어는 점점 더 고립된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2025년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다.
고령자 1인 가구와 고령 부부 가구가 급증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순간을 가족 내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고령자끼리의 ‘내부 순환’으로 옮겨진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전히
이 구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도, 지원하지도 않는다.

노노(老老)케어는 더 이상 숨길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왜 노노케어가 사적인 일이 아니며,
어떻게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요청해야 하고,
공공은 어떤 방식으로 이를 응답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본다.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노노(老老)케어

 

왜 노노(老老)케어는 보이지 않는가?

노노(老老)케어는 이상하게도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돌봄 자체가 사적인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돌봄, 특히 고령 부부 간 간병은
“외부에 알릴 일도 아니고, 창피한 일도 아닌가”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둘째,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 모두에게 감정적 침묵이 존재한다.
돌보는 사람은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상처받을까’ 걱정하고,
돌봄을 받는 사람은 ‘내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자책에 사로잡힌다.
결국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게 되고,
이 침묵은 구조적인 고립을 만들어낸다.

셋째, 공공 제도와 언론, 정책이 이 구조를 제대로 조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노케어는 대부분 가족 안에서 조용히 이뤄지고,
통계적으로도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으며,
정부 정책에서도 ‘공식 돌봄’이 아닌 ‘비공식 돌봄’ 범주에 머무른다.
이로 인해 정책 관심도, 예산 배정, 지원 서비스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노노(老老)케어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만,
제도 속에서는 투명인간처럼 살아가는 구조가 되고 있다.

 

노노(老老)케어는 왜 공론화되어야 하는가?

노노케어 문제를 공론화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사회적 책임 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노노(老老)케어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부담이 전가되어 있다.
공공 인프라의 부족을 고령자가 보완하고 있는 현실인데,
이 부담은 더 이상 개인의 헌신으로 유지될 수 없다.

둘째, 정서적 소외와 건강 악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이 구조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
돌보는 고령자는 간병자 스트레스, 우울감, 분노, 신체질환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 모두
빠르게 돌봄 시스템 전체에서 이탈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셋째, 차별 없는 정책 수립을 위해서라도 공론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많은 돌봄 정책은
요양시설, 방문요양, 전문 인력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배우자가 직접 돌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고,
이런 돌봄은 공적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즉, 이들을 제도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정책 결정권자들이 이를 인식해야 한다.

넷째, 돌보는 사람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제도는 ‘수혜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돌보는 고령자의 건강이나 감정 상태, 피로도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나 돌봄 제공자 역시 고령이고,
이들이 무너지면 돌봄 전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이유는
노노(老老)케어를 사회적 문제로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사회적 지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노노(老老)케어를 드러내고,
그 구조에 지지를 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 시작은 매우 작은 일일 수 있다.

첫째,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 사이에서,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부모님이 서로 돌보고 있어요’,
‘아버지가 많이 지치신 것 같아요’라는 말 한마디가
돌봄을 사적인 일에서 공적인 대화로 끌어낼 수 있다.

둘째, 커뮤니티 기반의 정보 공유와 감정 나눔이 필요하다.
복지관, 주민센터, 노인대학, 교회나 성당 모임 등
고령자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안에서
‘노노케어 경험 나누기’, ‘간병 스트레스 상담’,
‘돌봄 일기 쓰기 모임’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자연스럽게 말문을 트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셋째, 지자체 차원의 공식 지원 창구 개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령자 간병자 전담 상담 창구’나
‘노노케어 전용 상담 전화’,
‘돌봄자 심리소진 예방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숨기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언론과 콘텐츠 생산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방송, 유튜브, 다큐멘터리, 기사 등을 통해
고령자 간병자의 현실을 조명하고,
이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감동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여론 형성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지란 감정적인 위로만이 아니다.
사회가 존재를 인정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할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공공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노(老老)케어가 공론화되었을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떤 방식으로 응답해야 할까?
그 지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간병자도 보호 대상’이라는 정책 전환이다.

첫째, 돌봄 제공자 지원 제도 신설이 시급하다.
지금까지는 수혜자 중심의 지원이 대부분이었지만,
노노(老老)케어의 경우 간병자가 고령인 상황이 많기 때문에
이들에게도 정기 건강검진, 휴식권, 수당, 상담 서비스 등이
공식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둘째,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한 ‘교대 돌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는 돌봄이 한 사람에게 고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돌봄 순환 프로그램, 대체 간병 서비스,
일시 돌봄 인력 파견 등을 통해
돌보는 사람에게도 숨 쉴 시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책 홍보와 정보 전달을 강화해야 한다.
노노(老老)케어 관련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정작 필요한 사람은 그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민센터, 복지관, 병원 등
생활 밀착형 공간에서 직접적인 정보 전달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노노(老老)케어 통계 구축과 법적 정의 마련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노노(老老)케어는 명확한 용어 정의도 없고,
공식 통계에서도 제외된다.
이를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관련 연구와 조사를 확대해야
정책 설계가 가능해진다.

공공의 역할은 단순한 예산 집행이 아니라,
존재를 인정하고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노노(老老)케어는 어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구조 속에서의 생존 방식이다.
그 구조 속에서 고령자들이 감정과 체력을 다 쏟아붓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나는 힘들다’, ‘나는 지친다’,
‘나는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꺼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민폐가 아니라, 권리다.

노노케어는 더 이상
숨기거나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