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받는 것일까, 참아내는 것일까?
고령사회가 본격화되면서 ‘노노(老老)케어’라는 구조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누군가의 부모, 배우자, 이웃이 또 다른 고령자를 돌보는 이 구조는
제도적으로도 점차 확대되고 있고, 지역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 모델 안에서
하나의 현실적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노노케어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작 돌봄을 받는 쪽, 즉 수혜자들의 이야기는
정책, 제도, 언론의 뒷자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돌봄은 단순히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수치심, 고립감, 인간관계의 무게, 실질적 욕구와 불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고령자가 또 다른 고령자에게 돌봄을 받는 경우,
정서적 부담과 체면, 그리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다는 마음이 더욱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 글은 지금까지 말해지지 않았던,
노노케어 수혜자들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한 시도다.
그들이 원하는 돌봄은 무엇인지,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과 기대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나도 사람인데, 너무 부담스러워요”: 정서적 불편을 말하지 못하는 수혜자들
노노(老老)케어는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상호 돌봄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혜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구조는
단지 ‘도움받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같은 마을의 고령 이웃, 혹은 예전에 알고 지냈던 동년배가
이제 ‘나를 돌보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감정은 단순한 감사로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눈치를 먹는 것 같아요.”
“말은 안 해도, 그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늘 걱정이에요.”
“잘 챙겨줘서 고맙지만, 내내 신세 지는 느낌이에요.”
이런 이야기는 인터뷰 현장에서도 흔히 나오는 진심이다.
또한, 고령자들 사이에는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 ‘서로 귀찮게 하지 말자’는 문화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혜자들은 돌봄 제공자가 무리하고 있음에도
“괜찮다”, “안 와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돌봄에 의존하고 있는 양가적 감정을 겪는다.
문제는 이 불편함이 축적되면
돌봄의 질이나 서비스 자체보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수혜자들은 말한다.
“나는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눈치를 보는 거예요.”
“매번 고마운데, 그 고마움이 가끔은 짐처럼 느껴져요.”
이것은 단지 개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돌봄이 ‘사적인 관계’로만 유지될 때 발생하는 구조적 피로다.
“그 사람이 아프면, 나는 누구한테 말해야 하죠?”: 돌봄 중단의 두려움
노노(老老)케어는 돌봄 제공자 역시 고령자다.
그 말은 곧, 언제든 돌봄이 중단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혜자 입장에서 이 돌봄 중단은
실제보다 훨씬 더 불안하고 절박한 문제로 다가온다.
실제로 많은 수혜자들이
돌봄 제공자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가족을 돌보느라 몇 주간 활동을 쉬게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혼자가 됐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그 기간 동안 식사를 챙기지 못하거나,
약을 복용하지 않거나, 병원 예약을 놓치는 등
실제 생활 기반이 크게 흔들린다.
더 큰 문제는,
누구에게도 이 상황을 이야기할 창구가 없다는 것이다.
돌봄이 중단되었을 때
“저를 도와주던 분이 안 오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공식 절차가 없고,
수혜자 입장에서는 그것조차 민폐라고 여겨 말을 아끼게 된다.
또한, 이전 돌봄 제공자와의 관계가 좋았을수록
새로운 활동자를 받아들이는 데 더 큰 심리적 저항이 생긴다.
“누구든 오면 좋지 않냐”는 말은
실제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서적 신뢰 관계’를 무시한 발언이 될 수 있다.
수혜자들은 말한다.
“그분 아니면 안 돼요. 새로운 사람이 오면, 나는 다시 적응해야 하잖아요.”
“그냥 그 사람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요.”
이런 말은 돌봄을 단순한 서비스로 보지 않고, 관계로 경험하고 있다는 증거다.
돌봄 중단에 대한 두려움은
단지 서비스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안전망이 무너지는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나는 말벗보다 국이 필요해요”: 수혜자의 실질적 요구는 다르다
노노(老老)케어는 대부분 정서적 돌봄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즉, 말벗이 되거나, 산책을 함께 하거나,
안부를 묻는 등의 ‘관계 중심 활동’이 강조된다.
그러나 실제로 수혜자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청하는 것은
현실적인 생존과 일상 유지에 관련된 지원이다.
“말은 좋죠. 그런데 밥을 못 해 먹겠어요.”
“오늘 약을 안 먹었는데, 그냥 지나갔어요.”
“물리치료를 가야 하는데, 혼자는 못 가요.”
이런 말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자의 실질적인 생존 위기를 보여준다.
물론 정서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수혜자들은 그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도움을 원한다.
가령, 간단한 반찬 전달, 병원 동행, 약국 처방 수령,
집안 정리, 쓰레기 분리 배출, 계절별 난방 조절 등
작지만 치명적인 일상 과제가 그들의 일상을 어렵게 만든다.
문제는 현재의 노노(老老)케어 시스템은
이런 요청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공자도 고령자이기 때문에 무리한 노동은 어렵고,
지자체도 활동 범위를 ‘정서 위주’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수혜자들은 말한다.
“전화보다는 국 하나가 필요하고, 안부보다는 병원 한번 같이 가주는 게 더 고마워요.”
그 말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돌봄의 방향과 내용이 현실의 필요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경고다.
“우리는 고마워해야만 하는 사람이기를 원치 않아요”: 수혜자의 자존감과 목소리
노노(老老)케어가 확산되면서
수혜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어느 정도 형성되고 있다.
대체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 ‘돌봄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묘사된다.
그리고 여기에 감사와 배려의 감정이 더해지며
수혜자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수혜자들은 말한다.
“고맙죠. 그런데 내가 매번 고마워해야 하는 것도 피곤해요.”
“나는 그냥 내 삶을 살아가고 싶은데,
늘 누군가의 수혜자로 남는 느낌은 자존심 상해요.”
이 말은 단지 예민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노노(老老)케어 수혜자도 주체적인 시민이자 생활인으로서
돌봄 안에서 존중받고,
돌봄의 조건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현재 대부분의 노노(老老)케어 시스템은
수혜자의 피드백 구조가 취약하다.
정기적인 욕구 조사나 만족도 조사가 없는 경우도 많고,
제공자의 활동이 중점 관리되다 보니
수혜자의 말은 전달되기 어렵다.
돌봄은 단지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주고받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어야 한다.
수혜자 역시 돌봄의 품질을 평가하고,
자신에게 맞는 돌봄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조용히 감사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방향을 함께 결정해야 할 주체다.
돌봄의 완성은 ‘받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때 가능하다
노노(老老)케어는 한국 사회가 맞이한 초고령화 현실 속에서
상호 돌봄이라는 인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조가 정말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공자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수혜자의 목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수혜자는 단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 돌봄의 과정과 결과를 가장 깊이 경험하고 평가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의 불편, 기대, 두려움, 요구는
곧 노노(老老)케어의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수혜자의 감정은
‘감사’보다 ‘불편’에 더 가까웠을 수 있고,
‘위안’보다 ‘불안’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그 감정을 듣고 구조에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공 돌봄의 시작점이다.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이며,
제공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설계하고 조율해 나가는 삶의 조건이다.
이제, 말하지 못했던 수혜자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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