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 )케어

노노(老老)케어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방식에 대하여

idea250625 2025. 7. 7. 05:33

'연대'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구조적 질문

노노(老老)케어는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구조를 의미한다.
고령사회에서 증가하는 돌봄 수요에 맞춰 등장한 이 모델은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회복, 노인 일자리 창출, 정서적 안정 등의 장점으로
많은 정책 논의에서 긍정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델이 실제로 누구에게 돌봄의 책임을 지우고 있는가,
그리고 그 책임이 공정하게 배분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다.

문제는 노노(老老)케어가 비공식적이고 비제도적인 상태로 확장될수록,
사회는 ‘국가 책임’ 대신 ‘개인 책임’을 정당화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돌봄의 부담이 일부 노인에게 집중되며,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노노케어라는 구조가
의도와는 다르게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성별적·지역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구조적 재설계가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노노(老老)케어 구조

 

돌봄의 성별 불평등: 여성 고령자에게 전가되는 무형의 노동

노노(老老)케어에서 돌봄을 주로 제공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현장 사례를 보면, 대다수가 여성 고령자다.
남성보다 더 오래 살고,
간호·가사 노동 경험이 많으며,
사회적으로도 돌봄 역할에 익숙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0대 여성 A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치매 초기 80대 여성에게
하루 두 번 식사를 챙기고, 병원 예약을 대신 잡고,
낙상 위험이 높은 날이면 방문해 상태를 확인한다.
이 활동은 자발적으로 시작되었고,
보상도 없으며, 공적인 책임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이
‘여성의 자연스러운 배려’라는 인식 아래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성 고령자의 경우 ‘돌봄을 받는 자’로 분류되는 일이 많지만,
여성 고령자는 돌봄 제공자이자 책임자로서 노동과 감정 모두를 감내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역할의 차이가 아니다.
여성 고령자는 돌봄 노동을 반복하면서
자기 건강 관리의 기회를 잃고,
정서적 소진을 경험하며,
경제적 보상 없이 ‘좋은 이웃’으로만 기능하게 된다.

노노케어는 결과적으로
여성 고령자에게 비가시적인 돌봄 노동을 요구하고,
이는 젠더 기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돌봄 자원의 지역 불균형: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노노(老老)케어가 사회적 대안으로 기능하려면,
지역 내 돌봄 자원이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도권과 지방 간의 복지 인프라 격차, 의료 접근성, 활동자 수급 상황
노노케어의 실효성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다.

예컨대, 경기도 성남시나 서울 은평구처럼
복지 예산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노인복지관 및 커뮤니티케어 조직이 활성화된 지역에선
노노(老老)케어 활동자에 대한 교육, 모니터링, 연계 체계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강원도 농촌 마을이나 전남 해안지역처럼
복지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선
이웃 간 돌봄이 ‘제도적 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지역 간 건강 격차와 돌봄 부담 격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도시에선 활동자가 일정한 시간만 일하고 관리받는 구조라면,
농촌에서는 활동자가 돌봄 제공자로서
24시간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결과적으로 지방의 노노케어는
과잉 돌봄과 과소 보상이라는 이중 구조를 낳으며,
지역 기반의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있다.

 

계층 불평등의 재확인: 중하층 고령자만이 돌봄을 주고받는다

노노(老老)케어는 원래
모든 고령자가 참여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 기반의 모델로 제안되었지만,
실제 참여 계층은 극히 제한적이다.
통계적으로도 활동자의 상당수는
소득 하위 50% 이내의 노인이다.

이는 중상층 고령자들이 돌봄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공식 활동에 관심이 없거나,
자발적 참여로 간주되어 비제도적 활동으로만 머무는 경우도 많다.

결과적으로 돌봄의 책임은
경제적 취약 계층의 고령자에게 집중된다.
일자리가 필요하거나, 지역 내 관계망이 부족한 노인일수록
노노케어에 참여하고,
대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고령자는 돌봄의 수혜자가 된다.

비공식적 자원에 기대는 이러한 복지 구조는
결국 가장 약한 이들에게 가장 많은 책임을 지우게 된다.

이처럼 노노케어는
‘평등한 돌봄 참여’라는 이상과는 다르게
사회경제적 약자의 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정책의 명분화와 공공 책임의 축소

노노(老老)케어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공공 책임의 이탈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종종 노노케어를
‘돌봄의 패러다임 전환’, ‘커뮤니티 케어의 진화’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일부 성공 사례는
노인의 사회 참여 확대, 공동체 복원 등
긍정적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국가가 제공해야 할 공공 돌봄을
개인 간 돌봄으로 대체시키려는 흐름
이 존재한다.

개인 간 노노(老老)케어가 확산되면
예산은 줄어들고, 인력 채용은 지연되며,
공식 돌봄 인프라는 민간이나 개인에게 위탁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이는 사회 전체의 돌봄 책임이
다시 가족, 개인, 특히 ‘자발적인 고령자’에게
재전가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결국 ‘좋은 취지’로 포장된 노노케어는
그 자체로 공공 복지의 후퇴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위험이 있다.
이는 제도의 명분화에 불과하며,
실제 돌봄 구조의 불균형과 돌봄의 피로를 심화시킨다.

 

불평등한 돌봄 구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노(老老)케어는 고령화 사회가 만들어낸
불가피한 돌봄 모델이자,
새로운 공동체 돌봄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그 안에 숨어 있는 성별, 계층, 지역, 책임의 불평등을 직시해야 한다.
돌봄은 누구나 필요하지만,
누구나 그 책임을 동등하게 지지는 않는다.

지금의 노노케어는
일부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사회는 그 구조를 유지한 채 방관하는 시스템
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노노(老老)케어를
‘착한 제도’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설계해야 한다.

제도적 보호 없이 확장되는 자발적 돌봄 구조는
오히려 돌봄 피로와 불평등을 재생산할 뿐이다.
진짜 공공성은
그 책임을 함께 지는 방식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