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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老老 )케어

지역 갈등을 키우는 노노(老老)케어? 돌봄과 커뮤니티의 이중 과제

by idea250625 2025. 7. 9.

돌봄이 지역을 나누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잘못 본 걸까?

노노(老老)케어는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공동체 중심의 돌봄 모델로 알려져 있다.
노인 돌봄의 공공 부담을 줄이고,
동년배 간의 정서적 교감을 강화하며,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하는 대안으로 평가받아왔다.

이 구조는 ‘이웃이 곧 돌봄의 자원’이라는 개념 아래
지역사회 기반의 연대와 상호지원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최근 노노(老老)케어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서는 예상치 못한 커뮤니티 내부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누가 돌보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누가 돌봄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돌봄의 공정성, 역할 분배, 감정 노동에 대한 인식 등
돌봄이 지역 내부의 관계와 구조를 흔들며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노노(老老)케어가 지역 커뮤니티에 어떤 긴장과 균열을 만들고 있는지,
그 갈등의 구조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해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돌봄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찰한다.

 

돌봄과 커뮤니티의 과제, 노노(老老)케어

 

누구는 돌보는 사람이고, 누구는 받기만 한다? 역할 고착화가 만드는 불균형

노노(老老)케어가 한 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고정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아파트 단지에서는
“A 할머니는 늘 도와주는 분”,
“B 어르신은 도와줘야 하는 분”이라는 식으로
역할의 낙인이 생기게 된다.

이런 구조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지만,
시간이 지나며 불만과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계속 챙기기만 하는데,
왜 누구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돌봄만 받아요?”
“도움 주는 것도 일인데,
왜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돼 있죠?”

이런 말은 단순한 피로감의 표현을 넘어서,
돌봄의 구조 안에 위계와 책임 불균형이 내재되어 있다는 경고다.

게다가 일부 수혜자는
자신이 지속적으로 ‘도움받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불쾌함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도움을 청한 적이 없는데 왜 계속 찾아와요?”
“나도 건강한데, 왜 나를 수혜자로 구분하죠?”

이처럼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의 역할이 고정되면
주체성과 상호성이 약화되고,
돌봄이 ‘책임’이 아닌 ‘부담’으로 인식되는 전환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역 간 유대는 강화되기보다
관계의 불균형과 긴장감으로 뒤덮일 수 있다.

 

“나는 왜 안 받지?” 돌봄 대상 선정의 불투명성과 박탈감

노노(老老)케어는 기본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고령자를 지역 내에서 매칭하는 구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혜자 선정이 명확한 기준 없이 비공식적 관계망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왜 저 분은 돌봄 대상인데, 나는 아니에요?”
“내가 더 불편한데 왜 나는 아무도 안 오죠?”
이런 말은 돌봄의 자원 배분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소규모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처럼
인적 관계가 긴밀한 커뮤니티에서는
돌봄 대상 선정이 오히려 편견과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민센터 직원이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 위주로 수혜자를 추천하거나,
경로당 회장이 친한 어르신에게만 돌봄을 배정하는 식의 사례는
‘관계 기반 돌봄의 그늘’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배제감과 소외감을,
받은 사람에게는 부당한 혜택을 누린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왜 안 돼?”라는 감정은
지역 커뮤니티 내 신뢰를 해치고,
노노(老老)케어에 대한 거부감과 회의감을 확산시키게 된다.

돌봄은 관계망 안에서 제공되지만,
그 관계망이 제도적 기준 없이 작동할 때,
오히려 돌봄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도와줬더니 오해를 샀어요” 정서적 오해와 감정 노동의 부작용

노노(老老)케어의 핵심은 ‘정서적 돌봄’이다.
안부 확인, 말벗, 산책 동행, 생활지원 등
신체적인 수발보다는 정서적 관계 맺기가 중심이 된다.

하지만 이 관계 맺기가 오해와 불편함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남성 활동자가 여성 수혜자를 돌보거나,
반대로 연령 차이가 적은 노인 간의 돌봄 관계에서는
가깝고 정서적인 교류가
사회적 오해나 소문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나는 정말 도와준 것뿐인데,
누가 보고 ‘둘이 사귀냐’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매일 같이 다니다 보니,
다른 어르신들이 이상하게 보시는 것 같아서 꺼려졌어요.”

이러한 감정의 불편함은
돌봄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제공자에게도 큰 심리적 부담이 된다.
결국 일부 활동자는
“말 나올까 봐 그 집은 안 가요”라며
정서적 돌봄을 스스로 중단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수혜자의 성격이나 태도에 따라
감정 노동의 강도도 달라지게 된다.
“어떤 분은 고맙다고 매번 인사하는데,
어떤 분은 아예 말도 안 해요. 그럼 괜히 서운해져요.”
정서적 상호작용이 돌봄의 핵심이지만,
그만큼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는 클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상황은
지역 커뮤니티 내 ‘감정적 불균형’을 낳고,
돌봄 관계가 사회적 오해와 피로로 인해 단절되는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

 

돌봄은 돌봄만이 아니다: 커뮤니티 유지의 부담이 더해지는 이중 구조

노노(老老)케어가 작동하는 현장은
단순한 돌봄의 제공과 수혜를 넘어서
지역 공동체의 분위기, 질서, 감정, 기대, 책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공간이다.

예를 들어 한 명의 돌봄 제공자가
단순히 반찬을 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 사람은 이미 ‘마을의 좋은 사람’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떠안게 된다.
“그분은 늘 애쓰시잖아.”
“어르신들을 그렇게 돌봐주는 분은 드물지.”
이런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해당 활동자에게는 계속해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준다.

또한 돌봄이 반복되면서
지역 내에서는 ‘누구는 기여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는 암묵적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저분은 아무데도 참여 안 하잖아.”
“맨날 받기만 하고, 무슨 말도 없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커뮤니티 안에서 누군가 ‘지속 가능한 활동을 못 하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공동체에 대한 배신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돌봄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돌봄을 ‘그만두면 안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노노(老老)케어가
단순한 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감정적·도덕적 구조물로 변질되는 지점이다.
이때 돌봄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커뮤니티 유지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위험을 안게 된다.

 

돌봄과 공동체를 함께 지키는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노노(老老)케어는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가 선택한 하나의 대안적 돌봄 방식이다.
지역 기반, 고령자 상호 참여, 정서적 관계 등
그 구조가 가진 장점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돌봄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돌봄 자체가 지역 공동체의 부담이나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
역할 고착화, 수혜자 선정의 불공정성, 감정 노동의 오해,
커뮤니티 유지 부담과 같은 문제들이 누적된다면
노노(老老)케어는 공동체를 연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균열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진짜 돌봄은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 관계가 공정하고, 상호적이며, 자율적일 때 가능하다.

돌봄은 지역을 묶는 실로 작용할 수도 있고,
그 실이 틀어지면 공동체 전체를 조이게 만드는 끈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노노(老老)케어를 ‘공동체의 힘’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갈등의 씨앗’으로 남길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정답은
공동체를 존중하면서도, 돌봄은 관계가 아닌 권리로 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