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노(老老 )케어

노노케어 실패 사례에서 배운다: 지속 가능한 돌봄의 조건은?

by 뽀롱행님 2025. 7. 20.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는 고령사회가 만든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입니다.
가족 중심의 돌봄 체계가 무너지고, 전문 요양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한 지금,
노노케어는 따뜻하고 자율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며 전국 곳곳에서 시범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습니다.
노노케어는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현장에서는 실패하거나 중단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고령자 간의 정서적 돌봄에만 의존했을 때 발생하는 지속성의 문제, 책임소재의 모호함, 피로 누적 등
여러 가지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노노케어의 실패 사례들을 통해
왜 돌봄이 지속되지 못했는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며
지속 가능한 돌봄 체계의 조건을 다시 정립해 보고자 합니다.

 

노노케어의 실패 사례를 통한 지속 가능한 돌봄

 

단절된 마을에서의 노노케어: 관계가 없으면 돌봄도 없다

충청북도의 한 농촌 마을에서는 지자체 주도하에 노노케어 시범사업이 진행됐습니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70대와 80대 고령자를 짝지어
하루 한 번 안부 전화를 주고받고, 주 2회는 서로 방문하며 생활을 공유하는 구조였습니다.

초기에는 참여자 모두 만족도가 높았지만, 3개월이 지나면서 이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전 관계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행정적으로 ‘주소지가 가깝다’는 이유로 매칭되었을 뿐,
실제 일상 속에서 관계 형성이 되지 않았던 두 사람 사이의 돌봄은
오히려 ‘부담’과 ‘의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례는 노노케어가 기계적 짝짓기만으로는 작동하지 않으며,
돌봄의 기반이 되는 관계의 역사, 정서적 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돌보는 노인의 피로 누적: 도와주는 것도 결국 노동이다

서울의 한 복지관에서는 ‘은퇴한 건강한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 사업은 언뜻 보기에 ‘선순환’ 구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돌봄 제공자였던 노인의 이탈률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문제는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배려와 책임’이 돌보는 이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감정 소진, 체력 저하, 돌봄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 예상치 못한 응급 상황까지 겪으면서
돌봄 제공자 역시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이는 노노케어가 단순한 ‘자원봉사’나 ‘이타심’에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돌봄은 노동이며, 지속되기 위해서는 체계적 보상과 역할 분산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제도 없는 시스템: ‘좋은 마음’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많은 지역에서 노노케어는 마을 주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이를 뒷받침할 법적, 행정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데 있습니다.

노노케어 활동 중 발생한 응급 상황, 돌봄 중 상해나 사고 발생, 사생활 침해 문제 등
다양한 분쟁 상황에 대해 명확한 대응 매뉴얼이나 책임 주체가 없었던 것
참여자들에게 큰 불안감을 주었고, 결국 이탈로 이어졌습니다.

노노케어는 따뜻함만으로 굴러가는 체계가 아닙니다.
지속가능한 제도적 장치와 계약 구조, 안전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노노케어를 위한 5가지 조건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첫째. 관계 기반의 커뮤니티 설계

노노케어는 인간관계 기반이 핵심입니다.
주소지 중심이 아닌, 관계 맥락 중심의 매칭 시스템이 필요하며
공동체 내 자조모임, 생활권 기반 소모임 등 미리부터 관계 형성의 장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둘째. 돌보는 이도 돌봄을 받는 구조

‘일방적인 돌봄’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서로에게 일정 부분 의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상호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돌봄의 ‘정도’를 조정할 수 있는 조율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셋째. 정서적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제도

돌봄 제공자에게는 소진 방지를 위한 지원 체계가 필요합니다.
예: 정기 상담, 돌봄 조절 요청, 역할 교대 가능 시스템 등
심리적 피로를 방치하면 돌봄 자체가 붕괴됩니다.

넷째. 공공의 개입과 책임 분산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기는 ‘자율성’은 위태롭습니다.
지역 복지관, 보건소, 지자체는 최소한의 코디네이터 및 안전 관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돌봄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행정적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기술과의 융합

AI 스피커, 스마트워치, 응급알림 시스템 등을 적극 도입해
사람의 부담을 기술이 보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돌봄은 노노케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장치입니다.

 

실패를 공유해야 진짜 성공을 설계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성공한 모델’만 주목해 왔습니다.
하지만 노노케어처럼 관계 중심, 자조 기반의 체계는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노노케어는
마을에 몇 명의 활동가가 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해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돌봄은 제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되풀이되는 실패에 대한 학습’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실패한 노노케어가 남긴 3가지 진실

  1. 돌봄은 ‘누가 하느냐’보다 ‘어떤 관계 안에서 하느냐’가 중요하다.
  2. 지속 가능한 돌봄은 자발성이 아니라 구조화된 지원을 필요로 한다.
  3. 사람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기술과 제도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노노케어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는 가치 있는 실패였습니다.
우리는 그 실패 위에 더 튼튼한 돌봄 생태계를 설계해야 하며,
그 시작은 실패를 분석하고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