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고령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도달한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돌봄의 구조는 여전히 낡고 제한적이다.
돌봄의 책임은 오랫동안 가족에게 맡겨져 왔고, 최근에는 정부가 재정을 통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그 어느 쪽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요양보호사 등 돌봄 인력은 부족하고, 비용 부담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돌봄을 '누가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돌봄의 형태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등장한 개념이 노노(老老)케어다.
노노케어는 단지 복지 정책의 한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돌봄의 경계와 의미를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이며,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제안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제도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시각 차이,
그리고 복지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단순히 누가 돌보는지를 넘어,
어떻게 돌봄을 설계하고 누구와 나눌 것인지에 대한 공동의 선택이 필요하다.
노노케어는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노노 (老老) 케어란 무엇인가
노노케어는 건강한 노인이 또 다른 노인을 돌보는 형태의 복지 시스템이다.
'노(老)' 자를 두 번 반복한 단어 자체가 이 제도의 핵심 구조를 상징한다.
이 제도에서는 비교적 건강하고 활동이 가능한 노인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서적으로 고립된 또래 노인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약 복용 알림
- 말벗
- 식사 준비나 청소 같은 간단한 가사 지원
- 병원 또는 복지관 동행
- 정기적인 안부 확인
이러한 활동은 의료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돌봄에 가깝다.
바로 그 점이 노노케어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노노케어는 복지의 전문성과 제도적 완성도보다는,
관계 기반의 실질적인 지원과 공감을 중심으로 설계된다.
이 제도의 핵심은 바로 '같은 세대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 돌봄'이라는 점이다.
노노케어는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노인 스스로가 돌봄의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현실적이고도 인간적인 복지 모델이다.
또한 노노케어는 참여하는 노인 모두에게 삶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인생 후반기의 ‘가치 회복’ 시스템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는 고립된 노인의 사회적 소속감을 회복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왜 지금 노노(老老)케어인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인구 구조의 변화에 비해 사회 시스템의 변화는 더디다는 것이다.
복지 인력은 늘지 않고, 요양시설은 한정적이며, 가족 구조는 해체되고 있다.
고령의 부모를 돌봐야 하는 50~60대 역시 노인층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노노 부양'이라는 구조가 현실이 되고 있다.
결국 기존의 방식으로는 지금과 같은 돌봄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복지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노노케어는 이런 현실적 문제에서 출발한 제도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방식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노케어는 돌봄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관계와 역할로 바라보게 한다.
이 점에서 노노케어는 제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속 가능한 돌봄 구조는 기술이나 자원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 안에는 사람 간의 연결과 감정, 공감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노케어는 바로 그 '정서적 돌봄'의 틈을 메워주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
사례로 보는 노노케어의 현실
서울시에서는 '어르신돌봄도우미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노노케어를 운영 중이다.
이 사업에서는 70대 초반의 건강한 노인이 80대 이상의 고령자를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말벗, 가사 지원, 병원 동행 등의 활동을 수행한다.
참여한 노인에게는 소정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돌봄을 받는 노인은 신체적 불편뿐만 아니라 정서적 고립감도 완화될 수 있다.
이 제도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살게 만들었습니다.”
이 짧은 말 속에는 노노케어의 본질이 담겨 있다.
돌보는 이와 돌봄 받는 이 모두가 의미를 얻는 구조, 그것이 바로 노노케어다.
부산, 대구, 전남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노노케어 프로그램이 시범 운영되거나 제도화되고 있다.
농촌이나 중소도시처럼 복지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노노케어가 지역 돌봄의 거의 유일한 해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특히 공동체 기반의 돌봄 관계 회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노노케어는 단순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함께 돌봄을 실천하는 사회적 연결망으로 기능한다.
노노(老老)케어가 주는 새로운 질문들
노노케어는 단지 '누가 돌볼 것인가'에 대한 답을 넘어서,
돌봄의 정의 자체를 다시 묻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돌봄을 '전문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노노케어는 돌봄을 '공감과 관계를 통해 주고받는 삶의 일부'로 본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은 복지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복지란 정부의 책임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가?
노노케어는 복지의 주체가 개인, 지역, 공동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이 수동적인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돌봄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결과는 단순한 정책 개선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인간 관계의 재설계로 이어질 수 있다.
노노케어는 '복지는 혜택'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복지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동의 책임과 연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메시지가 지금의 분절된 사회를 다시 하나로 엮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노노(老老)케어의 과제와 조건
노노케어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돌보는 노인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정서적 공감 능력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 수칙과 응급 상황 대처법도 습득해야 한다.
둘째, 건강과 안전 관리가 중요하다.
돌보는 노인 역시 고령이기 때문에
정기적인 건강 검진과 피로 누적 방지를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정당한 보상이 마련되어야 한다.
활동비나 교통비 등 실질적인 지원은 단순한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존중과 사회적 인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넷째, 지역 커뮤니티의 협력이 필수다.
지자체, 복지기관, 보건소, 시민단체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노노케어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이 제도가 노인을 값싼 대체 인력으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노케어는 단순히 예산을 절감하기 위한 방안이 아니라,
돌봄의 철학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실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많은 돌봄 행위는 여성의 몫으로, 혹은 가족 내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돌봄이 사회 전반의 핵심 문제가 된 지금,
우리는 이 돌봄을 가시화하고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노케어는 이러한 전환기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복지, 새로운 관계
노노케어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돌봄의 책임과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다.
이 제도는 단지 하나의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 공동체의 회복, 관계의 재구성이라는
근본적인 사회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우리는 더 이상 돌봄을 '전문가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
누군가는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
노노케어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도움에서 시작된 돌봄이,
서로의 삶을 잇고, 지역을 살리고, 사회를 바꾸는 연결 고리가 된다.
돌봄은 누구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사실을
노노케어는 조용히 말하고 있다.
이제는 돌봄을 단지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로 볼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에 존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는 더 이상 일방적인 복지를 감당할 수 없다.
공공과 민간,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모두 참여하는
다층적이고 참여형 복지 구조가 요구된다.
노노케어는 그 구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어떤 돌봄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지에 따라
그 가능성과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다.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적 기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노노케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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