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 )케어

마을이 다시 가족이 된다: 노노케어와 커뮤니티 회복의 연결고리

뽀롱행님 2025. 7. 21. 14:40

한때 마을은 곧 가족이었다.
아침이면 문 앞을 쓸며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어르신은 아이를 돌보며 마을 전체가 하나의 울타리로 기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도시화, 핵가족화, 고령화는 공동체를 해체시켰고,
이제 노인은 혼자 살며, 혼자 아프고, 혼자 죽는 시대에 내몰렸다.

그 속에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가 등장했다.
단순한 돌봄 구조를 넘어서,
이 모델은 무너진 이웃 관계와 커뮤니티의 회복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이 글에서는 노노케어가 어떻게 마을을 다시 가족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리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커뮤니티 회복과 노노케어

 

공동체 붕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공동체의 해체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는 사람들을 도시로 몰아넣었다.
대가족은 사라지고, 핵가족이 표준이 되었으며,
지금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5%를 차지할 만큼 분산되고 고립된 구조가 되었다.

특히 농촌과 지방 도시에서는 젊은 세대의 이탈과 고령화가 맞물리며
경로당, 마을회관, 동네 상점 등 커뮤니티의 거점이 하나씩 사라졌다.
마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해체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대상은 바로 ‘노인’이다.

이웃과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사는 삶.
누가 죽어도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현실.
공동체가 사라진 결과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증폭시킨다.

 

노노케어는 관계의 회복을 통해 공동체를 복원한다

노노케어는 돌봄을 위한 시스템이기도 하지만,
그 핵심에는 사람 사이의 연결이 있다.
이웃 어르신과 하루 한 번 전화하고, 식사 한 끼를 함께 하고,
병원에 동행하는 일상이 반복되며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한 마을에서는 70대 여성 A씨와 80대 여성 B씨가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둘이 함께 걷고 함께 약을 챙긴다.
이 관계는 단순한 보살핌이 아니라,
매일 말을 건네고, 기다려주는 관계이다.

이처럼 노노케어는 단절된 삶에 정서적 흐름을 연결하고,
무너진 공동체에 작지만 강력한 회복력을 심는다.

 

돌봄에서 커뮤니티로: 생태계로 확장되는 연결망

노노케어는 처음에는 사람 대 사람의 돌봄에서 시작되지만,
점차적으로 복지관, 보건소, 행정기관, 자원봉사단체 등과 연계되며
지역 전체가 돌봄의 주체로 변화하는 생태계를 만든다.

예컨대 부산의 한 구청은
노노케어 참여 어르신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기 교육을 시행한 후,
스마트워치를 보급하고, AI 스피커로 응급상황을 감지하며,
지자체, 복지관, 의료기관이 함께 데이터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구조에서는 어르신 한 명이 이웃과 연결되고,
이웃은 지역 기관과 연결되며,
전체 마을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작동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마을이 다시 가족이 되는 구조’다.

 

정서적 책임감이 마을을 지탱한다

공동체의 본질은 책임감이다.
노노케어 참여자들은 "그분이 오늘 안 보이시던데요",
"아침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셨어요",
"이틀째 문이 안 열리네요" 같은 작은 신호를 감지해
이웃의 안녕을 살핀다.

이 책임감은 법적 강제나 금전 보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직 관계에서 오는 신뢰와 공감을 통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책임감이 커질수록
이웃과 마을에 대한 정서적 소속감이 함께 자란다.

 

회복된 마을은 노인의 삶을 품는다

노노케어가 활성화된 마을은
노인의 삶이 달라진다.
식사를 제때 챙기고, 산책을 하며,
누군가의 존재를 기다리고 반가워하는 일상이 생긴다.

강원도의 한 마을에서는
노노케어를 계기로 자조모임, 생활동아리, 마을부엌, 걷기모임 등이 생겼다.
어르신들은 단순히 돌봄의 수혜자가 아닌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주체가 되었고,
그 결과로 지역의 고독사 발생률은 3년간 0%로 유지되었다.

 

기술은 따뜻함을 확장하는 도구여야 한다

AI, IoT, 스마트워치 등 디지털 기술은
노노케어를 보완하고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돌봄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기술은 감지하고 분석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진심 어린 말 한마디와 따뜻한 손길을 줄 수는 없다.
노노케어에 기술이 결합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사람을 잇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알림이 ‘이웃 어르신의 움직임이 없음을 감지했다’고 알릴 때,
그 다음 행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방문하고, 전화를 걸고, 안부를 묻는 일.
이것이 기술이 ‘정서적 관계’를 매개하는 방식이다.

앞으로의 과제: 제도화와 지역 연계

노노케어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제도적 틀 안에서 자리 잡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장치가 필요하다.

  • 노노케어 참여자에 대한 소정의 수당 또는 인센티브 제공
  • 돌봄 교육 프로그램 마련 및 의무화
  • 마을 단위 돌봄 코디네이터 양성 및 배치
  • 고독사 예방조례와의 통합 운영
  • 디지털 돌봄 기기의 보급 및 교육 연계

이러한 체계를 통해 자발성과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며,
노노케어가 하나의 ‘운동’이 아닌 ‘구조’로서 자리잡게 된다.

 

우리는 왜 다시 마을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가족이 부족한 시대,
사람들은 다시 ‘이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노노케어는 고령화의 해답이면서도,
사실은 공동체 회복의 신호탄이다.

서로를 챙기는 이웃,
낯선 타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의 인식 전환.
그것이 바로 마을이 다시 가족이 되는 방식이다.

노인의 돌봄을 넘어,
삶의 품격과 인간다운 마지막을 위한 연대.
노노케어가 만드는 변화는 단지 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이 들며 살아갈 세상을 위한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