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케어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교육 부재의 함정
선의만으로 돌봄을 시작해도 괜찮을까?
한국 사회가 초고령화에 진입하면서,
고령자들이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老老)케어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자식이 없는 독거노인,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
한계에 다다른 공공돌봄 자원 속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또 다른 노인이
식사를 챙기고, 병원에 동행하고, 말벗이 되는 구조는
정책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 노노(老老)케어는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온기와 인간다움을 상징한다.
돌봄을 받고, 돌봄을 주면서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고,
사소한 일상을 함께 꾸리는 모습은
공공 서비스로는 대체할 수 없는 관계의 가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돌봄의 현실 속에는
“잘하려 했지만 실수했다”,
“도와주려 했지만 오히려 불편을 줬다”,
“내가 도와줄 자격이 있었을까” 하는
수많은 질문과 불완전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노노(老老)케어가 ‘아무런 교육 없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좋은 마음’만으로 시작된 돌봄이
의도치 않은 위험을 만들고,
관계의 어긋남을 초래하고,
수혜자와 제공자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글은
노노(老老)케어가 왜 기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교육 공백이 어떤 부작용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이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를 살펴본다.
돌봄은 일상이지만, 동시에 기술이다: 전문성이 빠진 구조
많은 사람들은 노노(老老)케어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냥 안부만 묻고 밥만 챙기면 되는 거 아냐?”
“이웃끼리 돕는 건데, 무슨 훈련까지 필요해?”
이러한 생각은 선의에 기반한 접근이지만,
현실의 돌봄은 훨씬 더 복잡하고 민감하다.
예를 들어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고령자가
약 복용을 거부하거나,
밖에서 길을 잃었을 때,
단순한 말로는 설득도 어렵고
제지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혹은 혈압이 높거나 당뇨를 앓고 있는 수혜자가
복용 약을 중단했을 때,
제공자가 “괜찮겠지”라며 방치하거나,
의학적 판단 없이 ‘민간요법’을 권하는 일도 실제로 벌어진다.
이처럼 기초 건강지식, 응급 상황 대처, 감정 조절, 의사소통 방식 등
돌봄에는 분명한 ‘기술’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단지 ‘좋은 마음’이나 ‘경험이 많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노노(老老)케어 활동자들 대부분이
어떤 사전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은 채
현장에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발적인 주민 기반 돌봄은
더욱 교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선의’는 훌륭한 출발점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그 선의를 뒷받침할 ‘실력’과 ‘지식’이 함께 있어야 한다.
관계는 감정의 기술이다: 말 한마디로 깨지는 신뢰
노노(老老)케어는 물리적 지원만큼이나
정서적 관계 맺기가 핵심이다.
그러나 감정은 가장 섬세한 영역이며,
경험이나 나이보다 더 필요한 것이
의사소통과 감정 조율에 대한 교육이다.
예를 들어, 어떤 활동자가 수혜자의 집을 방문해
“여긴 왜 이렇게 지저분해요? 좀 치우셔야죠.”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 말은 도움을 주려는 의도였겠지만,
수혜자 입장에서는 ‘지적당했다’,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 나이에 애들한테 손 벌리는 건 창피하지 않아요?”
라는 말이 무심코 나온다면,
그 순간 돌봄은 존중이 아닌 판단의 구조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돌봄 제공자가
기본적인 감정 조절, 경청 기술,
비판 없는 대화 기술 등에 대한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령자 간의 돌봄에서는
세대 차이 없이도 삶의 자존감, 체면, 사회적 배경이 엇갈릴 수 있어
감정의 충돌은 쉽게 발생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활동자들이
“나는 도와준 건데 왜 기분 나빠하시지?”라고 느끼고,
수혜자 역시 “그 사람 오면 불편해요”라고 말하면서
결국 돌봄 관계 자체가 단절되는 것이다.
이처럼 ‘말 한마디’가 신뢰를 만들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영역이 바로 돌봄이며,
그 말과 감정의 기술은 훈련 없이 결코 익히기 어렵다.
상황이 바뀌면 문제는 생긴다: 대응력 없는 현장의 현실
돌봄 현장은 매일 같지 않다.
처음에는 말 잘 듣고 환하게 웃던 수혜자가
며칠 뒤에는 무기력해지고,
식사를 거부하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노노(老老)케어 활동자들은
이런 변화에 대해 뾰족한 대응 전략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을 두드렸는데 계속 조용하세요.
혹시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창문 너머로 봤는데,
불은 꺼져 있고 전화도 안 받으세요.
그런데 이런 경우,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는 실제 활동자들이 가장 자주 겪는 상황 중 하나다.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하는지,
기다렸다가 다시 방문해야 하는지조차
현장에서는 명확한 지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수혜자가
활동자에게 폭언을 하거나,
예상치 못한 감정 폭발을 보일 때도
대부분의 활동자는 당황하거나, 상처받거나,
관계를 종료하게 된다.
이런 돌발 상황은 활동자의 책임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상황 대처력’과 ‘대응 기술’을 가르쳐줄 체계가 없다는 데 있다.
돌봄은 변화를 전제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과 매뉴얼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훈련이 없으면, 책임도 불분명해진다: 제도의 헛점
노노(老老)케어의 또 다른 문제는
제공자와 수혜자 모두가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활동자가 돌봄 도중
수혜자의 건강 상태 악화, 넘어짐, 응급상황에 직면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일이 발생한다.
“도와주다 그런 건데 왜 저보고 책임지라고 해요?”
“나는 자격증도 없는데, 그분이 쓰러졌을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이런 상황은 실제로 종종 발생하며,
특히 민감한 응급상황에서는
사소한 실수가 ‘과실’로 평가될 수 있다.
만약 활동자가
기초 건강 정보, 응급 신고 요령,
일시적 의식 장애 대응법,
신체접촉 제한에 대한 지식 등을 훈련받았다면
그 책임은 훨씬 줄어들 수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도
‘최선을 다한 조치’를 입증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훈련이 없다면
활동자도 수혜자도 모두
‘알아서 판단한 일’의 결과를 개인이 감당하게 되는 구조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은
노노(老老)케어가 점점 제도화되는 지금,
제도와 교육 사이의 가장 큰 간극으로 드러나고 있다.
교육은 단지 활동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행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모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노노(老老)케어는 ‘좋은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노(老老)케어는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필연적 대안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효과적인 돌봄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돌보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과 훈련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돌봄은 인간적인 일이지만,
그만큼 섬세하고, 민감하며, 때로는 위험한 일이다.
의도는 선할 수 있지만,
결과는 전문성과 훈련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마음만으로 돌봄이 가능하다는 인식은
결국 제공자와 수혜자 모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제도적 함정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노노(老老)케어를
‘자발적 활동’이 아닌,
‘훈련된 참여 구조’로 전환할 때다.
모든 활동자는 기본 교육을 통해
정서, 안전, 대응력, 법적 책임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수혜자 역시 더 안전하고 존중받는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돌봄은 기술이며,
그 기술은 훈련과 지식, 제도적 보호를 통해 완성된다.
노노(老老)케어가
진짜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모델로 남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교육의 공백을 메우는 시스템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