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남성의 돌봄 참여: 노노(老老)케어의 또 다른 도전
왜 돌봄에는 여전히 남성이 보이지 않는가?
노노(老老)케어, 즉 고령자가 또 다른 고령자를 돌보는 이 모델은
초고령 사회의 대응 전략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건강한 고령자가 비슷한 연령대의 이웃을 돌보는 구조는
공적 자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동시에
고령자의 사회 참여와 일자리 연계라는 이점까지 가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수많은 노노(老老)케어 사업과 연구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돌보는 사람’의 성별 편향이 심하다.
현장 활동자의 대부분은 60~70대 여성이고,
돌봄을 받는 사람 중에는 남성이 많지만,
돌봄을 제공하는 남성은 매우 드물다.
이는 단순히 참여 비율의 차이를 넘어서,
돌봄을 성별화된 역할로 인식하는 사회 구조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노노(老老)케어가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하고 성평등한 돌봄 모델’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령 남성의 참여 확대와 제도적 진입 유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고령 남성이 왜 돌봄에 참여하지 않는지,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정서적·문화적 장벽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왜 고령 남성은 돌봄에 참여하지 않는가?
노노(老老)케어에서 고령 남성의 참여율은 매우 낮다.
여성 노인의 경우 다양한 사회참여 경로를 통해
돌봄 일자리나 봉사활동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반면,
남성은 대부분 관망하거나 배제된 상태에 머무른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사회화의 결과가 크다.
1950~60년대에 태어난 고령 남성은
대체로 ‘남자는 일, 여자는 가정’이라는 성역할 인식 아래 자라왔다.
그들에게 ‘누군가를 돌본다’는 행위는
자신의 삶에서 낯설고, 익숙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이들에겐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행동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또한, 퇴직 이후에도 남성들은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을 내면화한 경우가 많아
감정 표현이나 관계 맺기에 서툴고,
정서적 접근이 중요한 돌봄 활동에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크다.
게다가 현재의 노노(老老)케어 활동 구조도
상대적으로 여성의 언어와 방식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남성이 진입하기에 진입 장벽이 높을 수 있다.
정서 교류, 말벗, 위로, 일상적 상호작용 등
돌봄의 핵심 요소들이 여성의 사회화 방식과 더 잘 맞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요소는 고령 남성 스스로가
“나는 돌봄에 어울리지 않아”,
“그건 여성들의 일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고령 남성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만 머무르게 되고,
돌봄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배제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참여하고 싶은 남성도 있다, 그러나 길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고령 남성이 돌봄에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퇴직 후 돌봄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남성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특히 배우자를 간병해본 경험이 있거나,
손주를 돌보며 가사 노동에 익숙해진 남성들 중에는
타인을 돕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런 남성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와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노노(老老)케어 활동은
노인복지관이나 노인일자리센터를 통해 연결되지만,
이들 기관에 접근하는 남성의 비율 자체가 낮다.
복지관 프로그램 자체가
문화교실, 요리교실, 정서지원, 건강체조 등
여성 중심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남성은 스스로 그 공간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곳’이라 여긴다.
또한 활동 초기에는
돌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수혜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응급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용적이고 매뉴얼화된 안내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남성들은 ‘서툴게 보일까 봐’ 참여를 꺼리고,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지역사회 내에서 ‘남자가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고령 여성을 돌보는 남성 활동자는
정서적 오해, 관계 경계의 어려움, 주변의 시선 등으로 인해
적극적인 활동을 망설이게 된다.
참여 의지는 있지만, 구조가 닫혀 있고,
지원은 부족하며, 시선은 따갑다.
이 상황은 고령 남성의 돌봄 참여를 사실상 차단하는 3중 장벽이 된다.
고령 남성의 참여 없이는 노노(老老)케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까지 노노(老老)케어는 여성 고령자의 헌신에 의존해 운영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특히 여성 고령자 인구도 고령화되고 있으며,
신체적 피로, 정서적 소진, 반복되는 무급 돌봄의 부담은
이미 한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고령 남성의 돌봄 참여는
단지 성별 균형을 위한 상징적 차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필수적인 돌봄 인프라 확장의 열쇠다.
남성 고령자는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고,
퇴직 후 사회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욕구도 높다.
돌봄은 더 이상 특정 성별만의 역할이 아니다.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모든 구성원이 일정 수준의 돌봄 책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안에 고령 남성의 자리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게다가 남성이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남성 수혜자 또한 더 편안하게 돌봄을 요청하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동성 간 돌봄은 정서적 안정과 신체 접촉의 편의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며,
남성 고령자의 돌봄 거부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처럼 여성 고령자만이 주체가 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 책임은 점점 편중되고,
결국 돌봄 인력의 고갈이라는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남성도 돌볼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고령 남성의 돌봄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남성도 돌볼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인식은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서,
제도, 교육, 문화, 실천의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남성 대상 돌봄 교육 콘텐츠가 개발되어야 한다.
기존 여성 중심의 감정 기반 접근을 넘어서,
논리적이고 단계적인 커리큘럼,
역할 시뮬레이션,
응급 상황 대처 매뉴얼,
피드백 기반의 참여 모델 등을 통해
남성의 사고방식에 맞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참여할 수 있는 ‘남성 친화형 돌봄 모델’이 필요하다.
가령, 정비·수리·산책 동행·식사 조리 지원 등
남성이 비교적 편안하게 진입할 수 있는
‘생활 중심 실용 돌봄’부터 시작해 돌봄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구조가 중요하다.
셋째, 지자체와 복지 기관은
남성 고령자의 돌봄 참여를 독려할 수 있도록
홍보와 접촉 방식을 다변화해야 한다.
단순 포스터가 아니라
마을 방송, 지역 내 정년 퇴직자 네트워크, 노인회 등을 활용한
‘대면 기반 참여 권유’가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성이 돌봄을 한다고 해서 ‘이상하다’는 시선을 없애는 것이다.
남성이 돌봄을 하는 것은
사회가 성숙해졌다는 지표이며,
그 자체로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진짜 공동체 케어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돌보는 것이다
노노(老老)케어는 고령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구조이자
사회적 연대의 실천 방식이다.
하지만 그 구조가 특정 성별의 책임에 편중되어 있다면,
결국 지속 가능성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여성 고령자가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남성 고령자의 참여가
단지 보완이 아닌 핵심 전략이 되어야 한다.
남성이 돌보는 일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낯설다는 이유로
그들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면,
노노(老老)케어는 더는 확장할 수 없다.
이제는 ‘누가 돌보느냐’보다
‘함께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고령 남성의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진짜 지속 가능한 돌봄 시스템을 위한 필수 요소다.
그들이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모든 세대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진정한 공동체 돌봄은 성별을 넘어
모두가 함께 돌보는 구조 속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