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老老 )케어

노노(老老)케어 중단 이후의 삶: 돌봄의 공백

idea250625 2025. 7. 7. 12:07

돌봄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무엇이 남는가?

초고령사회인 오늘날 한국에서 ‘돌봄’은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간 간병이 어려워지고, 공공 돌봄 자원은 한계에 봉착하면서,
‘노노(老老)케어’—즉, 노인이 또 다른 노인을 돌보는 구조—는
현실적 대안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이 구조는 자발성과 연대감,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매우 불안정한 돌봄 지속성의 위기가 숨어 있다.
노노케어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또한 고령자이며,
그들의 건강, 관계, 상황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노노(老老)케어가 멈췄을 때, 그 돌봄의 공백은 누가 메우는가?
돌보던 사람이 어느 날 사라졌을 때,
그 남겨진 사람의 일상과 안전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이 글은 그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돌봄 중단’의 실태를 살펴보고,
그 공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안해 본다.

 

노노(老老)케어 중단과 돌봄의 공백

 

노노(老老)케어의 돌봄 중단은 곧 ‘생활 붕괴’를 의미한다

노노(老老)케어는 단순히 안부를 묻는 정서적 지원을 넘어,
식사, 약 복용, 위생, 병원 동행 등 생존을 유지하는 기반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경증 고령자들에게
노노(老老)케어는 ‘생활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연결망’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에서 돌봄이 중단되면,
그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진다.
예를 들어, 식사를 챙겨주던 활동자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면
수혜자는 하루 세 끼를 거르거나, 부실한 식사를 반복하게 된다.
약을 정해진 시간에 먹지 않거나,
진료 일정을 놓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이 중단이 단계적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노노(老老)케어 제공자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거나,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돌봄의 공백을 사전에 예측하거나 대체하지 못한다.

돌봄이 멈추면, 단지 불편함이 아니라
위기 상태로의 전환’이 곧바로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돌봄 공백이 아니라
‘일상 붕괴 시점’이라 명명한다.
왜냐하면 신체적 기능, 정서적 안정, 대인관계, 건강 관리 등
모든 영역이 동시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돌봄 중단은 단순한 인력의 부재가 아니라
고령자의 생존권과 존엄성 자체가 위협받는 구조적 붕괴를 의미한다.

 

비공식 돌봄의 공백은 시스템이 감지하지 못한다

노노(老老)케어의 약 60~70%는
노인 일자리 사업 같은 제도 내 활동이 아닌,
비공식적·자발적·비정형적인 돌봄으로 구성돼 있다.
이웃끼리 서로 돕거나, 경로당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시작된 돌봄 관계,
과거 친구였던 사이에서 형성된 장기 돌봄 등이다.

이러한 돌봄은 따뜻하고 인간적일 수 있지만,
시스템상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감지되지 않는다.
돌보던 사람이 사라진 이후에
지자체나 복지기관이 이를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A 어르신이 B 어르신의 돌봄을 도맡아왔지만,
A 어르신이 입원하면서 그 관계가 중단됐다고 하자.
그 돌봄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B 어르신이 더 이상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누구도 모르게 지나간다.

문제는 이 상태가 수일, 수주 이상 지속되더라도
복지 행정 시스템은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안부 전화도, 방문도 없고,
위기 정보가 행정망에 뜨는 일도 없다.

실제로 서울, 부산, 전북 등 여러 지역에서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는 이웃의 말로 인해
돌봄 중단 상황이 뒤늦게 발견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그 중 일부는 돌봄 중단 후 사망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비공식 돌봄은 따뜻한 관계의 다른 이름일 수 있지만,
그만큼 위기에 더 취약하고, 복구가 불가능한 형태의 구조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가족은 멀고, 행정은 닿지 않는다: 공백을 둘러싼 고립의 구조

노노(老老)케어의 수혜자 상당수는
가족과 연락이 끊긴 상태거나,
자녀가 있어도 실질적인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고령자들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0세 이상 고령자 중 가족 간 연락 단절 경험이 있는 비율은 24.1%에 달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자녀가 있는 노인’일지라도
실제로는 완전한 독거상태나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복지센터나 지자체는
일상적인 안부 확인만으로는 돌봄 중단을 감지할 수 없다.
상담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고령자는 스스로 위험 신호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돌봄의 공백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그 사람을 꾸준히 만나온 ‘돌봄 제공자’뿐이다.
하지만 그 돌봄 제공자가 사라졌다면,
이중 삼중의 고립 상태가 고령자에게 그대로 남게 된다.

특히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거나
우울증, 사회적 위축 상태에 있는 수혜자의 경우,
자신이 돌봄 공백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을 버티게 된다.

이처럼 가족도 멀고, 행정도 닿지 않는 고령자에게
노노(老老)케어 중단은 일상뿐 아니라 생존 기반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위기다.

 

현재 공백을 메우는 건 여전히 ‘또 다른 비공식자’들이다

노노(老老)케어가 중단된 이후,
그 공백을 제도적으로 메울 수 있는 장치는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 선도 지자체에서는
치매안심센터, 지역돌봄 코디네이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연계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는 전체 돌봄 수요에 비해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결국 현실에선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다시 또 다른 개인, 즉 또 다른 고령자다.
예를 들어 A 어르신이 입원하면서 돌봄을 중단하면,
이 소식을 들은 C 어르신이 임시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피로와 위험을 새로운 돌봄 제공자에게 전가하는 구조이며,
책임과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게다가 제도적 지원 없이 수행되는 돌봄은
시간이 갈수록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활동자들은
“한 명 돌보는 것도 버거운데, 갑자기 두 명이 되었다”,
“그 사람 입원하자 나는 5일째 쉬지 못하고 있다”
는 증언을 통해 ‘돌봄이 돌봄을 삼키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커뮤니티 케어의 이상은 무너지고
돌봄 포기자, 돌봄 탈락자, 돌봄 난민이 증가하게 된다.

 

공백 없는 돌봄을 위해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노노케어는 초고령사회가 만든 자조적이고 인간적인 돌봄 구조다.
그 안에는 이웃 간의 연대와 공동체의 온기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도 고령자라는 점에서,
그 구조는 본질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중단될 수 있다.
그 돌봄이 멈췄을 때 남겨진 고령자는 단절된 채로 일상 속 위험에 노출되고,
공백을 인지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누가 돌볼 것인가’, ‘어떻게 돌봄을 시작할 것인가’에만 집중해왔다.
이제는 돌봄이 끊기는 순간, 누가 그 공백을 감지하고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지에 대한
사후 구조 설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돌봄은 단지 시작하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되고 이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노(老老)케어가 진정한 공공 돌봄의 일부로 기능하려면,
돌봄이 중단되었을 때 자동으로 대체 인력이 투입되거나,
지자체가 위기 신호를 즉시 인식하고 개입할 수 있는 체계적인 대응 구조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사람은 돌봄 속에서 살아가지만, 돌봄이 끊겨도 삶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노노(老老)케어가 지속 가능하려면, 그 끈이 끊어졌을 때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일이
복지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공백 없는 돌봄이야말로 진정한 복지의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