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고령자는 왜 노노(老老)케어에 의존하게 되는가?
‘복지 대상이 아닌 노인’이라는 낙인, 돌봄 사각지대를 만든다
고령사회가 본격화되며 돌봄 수요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
노인의 건강 상태가 양극화되는 가운데,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들이 제도의 보호망 안으로 충분히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돌봄이 필요한 노인 = 빈곤층 또는 독거노인이라고 단순화된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에 따라 복지 정책도 주로 ‘취약계층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중산층 고령자는 그 기준에 포함되지 않으며,
그 결과 정작 돌봄이 절실한 순간에도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의외로 많은 중산층 고령자들이
치매 초기, 심신 허약, 외로움, 생활 보조의 필요 등
명백한 돌봄 욕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이러한 ‘돌봄 공백’은 결국
이웃 고령자, 친구, 노인정 지인 등에게 의지하게 만들며,
자연스럽게 노노(老老)케어 구조로 이어진다.
이 글에서는 중산층 고령자가 왜 노노(老老)케어에 의존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제도적 공백과 사회적 부담의 전가 구조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복지 기준은 낮은 소득만을 본다, 일상 돌봄 수요는 외면한다
대한민국의 복지 정책은 ‘필요 기반’이 아닌
자격 기반(Income-Based Eligibility)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소득이나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일 경우에만
복지 수혜 자격이 주어진다.
이러한 구조에서 중산층 고령자는 제도의 문턱에 걸리기 쉽다.
예를 들어, 장기요양등급 신청 시,
신체 기능과 인지 기능의 저하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치매 초기, 고관절 수술 후 회복기,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 등은
‘심각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외된다.
게다가 많은 고령자들이
소득은 적지만 집 한 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복지 기준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이처럼 실제 생활에서 돌봄이 절실하더라도
제도상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노인’으로 간주되며,
사실상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결국 이들은 요양보호사를 부르기에도 자격이 안 되고,
활동지원사를 신청하기엔 등급이 부족하며,
민간 서비스를 쓰기엔 돈이 부족하다.
이처럼 복지에서 ‘중간에 낀’ 고령자들은
남몰래 무너져간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노노(老老)케어라는 비공식 돌봄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가족의 물리적·정서적 거리감이 만든 또 다른 공백
중산층 고령자는 자녀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행정적으로는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 노인’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그 자녀들이 실제로는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중산층 노인의 자녀는
취업·결혼을 통해 타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기업, 공공기관, 병원, 전문직 등
시간과 에너지를 가족 돌봄에 할애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게다가 가족 간 정서적 거리도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돌봄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민폐’, ‘부끄러움’, ‘자존심 상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령자는
“애들 바쁘니까”, “얘기도 못 꺼내겠어”라며
자녀에게 돌봄을 기대하지 않고,
그 대신 가까운 고령 이웃에게 요청하거나,
같은 노인정의 회원끼리 서로를 돌보는 방식으로
일상의 돌봄을 해결하게 된다.
이는 자발적 돌봄이 아니라,
공적·사적 돌봄이 모두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비공식적 생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노노(老老)케어는 이처럼
가족 돌봄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의 구조적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민간 간병의 진입 장벽과 ‘소극적 자산가’의 취약성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 고령자라면
민간 간병인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4시간 상주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한 달에 최소 35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주간 8시간 간병만 맡겨도 월 180~200만 원이다.
이 금액은 국민연금 수령자 평균 월 소득(약 60만 원)의
3배 이상에 해당한다.
물론 중산층 고령자는 소득이 일정 이상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유동성 자산이 적고,
자산 대부분이 주택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은퇴 후 소득이 끊긴 고령자는
월세, 식비, 병원비만으로도 생활이 빠듯하다.
그렇기에 민간 돌봄 서비스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형식적으론 ‘자산 보유자’지만,
실제론 사회적 취약계층처럼 돌봄 공백에 노출된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대안은,
‘돈이 들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또 다른 고령자’뿐이다.
노노케어는 중산층의 돌봄 현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는 가난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설계가 삶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해 생긴 문제다.
노노(老老)케어는 돌봄의 최전선이자, 제도의 그림자다
노노(老老)케어는
중산층 고령자의 돌봄 공백을 채우는 가장 현실적인 장치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서
실질적인 효과도 만들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식사를 혼자 준비하지 못하는 고령자가
이웃 고령자의 반찬 나눔 덕분에 하루를 버틴다.
자녀가 없거나 바쁜 경우,
이웃 고령자가 함께 병원에 동행하거나,
약 복용을 도와주는 사례도 많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선
전직 간호사 출신 고령자가
마을 내 중증 장애 노인을 비공식적으로 돌보며
지역 노노케어의 핵심 인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조는 비공식적이고, 불안정하다.
돌보는 사람이 병이 나거나,
관계가 틀어지거나,
돌봄 자체가 한계에 이르면
즉시 중단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중산층 고령자들에게
노노케어는 ‘마지막 남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구조는
단순히 ‘좋은 제안’으로 남아선 안 되며,
제도적 보호와 연결된 공공 돌봄 체계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중산층을 위한 돌봄 설계가 필요하다
중산층 고령자는 더 이상 ‘안전한 계층’이 아니다.
그들은 지원 대상도 아니고,
지원 여력도 없는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새로운 취약계층이다.
이들을 위한 돌봄 정책이 필요하다.
공공 서비스는 소득 중심이 아니라
생활 기반의 위험 평가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노노(老老)케어와 같은 지역 기반 돌봄을
공적 돌봄망 속에 포함시키는 제도 설계가 시급하다.
또한,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중간 요금대의 간병 서비스,
마을 단위 노노케어 교육 지원,
비공식 간병자 보호를 위한 건강 및 심리 서비스 등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누가 더 가난한가’를 기준으로 복지를 설계해왔다.
이제는
‘누가 더 고립돼 있는가’,
‘누가 더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가’를 기준으로
돌봄의 눈높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중산층 노인도 돌봄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손 내미는 정책이
곧 돌봄의 미래를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