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간병의 사각지대, 노노(老老)케어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늘어나는 치매 환자, 줄지 않는 간병 사각지대
대한민국은 2025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중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는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돌봄을 필요로 한다.
식사, 배변, 복약, 외출, 수면까지 모든 생활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어려워진다.
국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도입하고, 치매안심센터를 전국 단위로 확대했지만,
현장의 간병 공백은 여전히 심각하다.
공공 돌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가족 간병은 경제적·정서적 부담이 크다.
특히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하거나 등급이 낮은 치매 초기 고령자들은
공식 제도의 돌봄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일상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이러한 사각지대 속에서 최근 주목받는 돌봄 방식이 바로
‘노노(老老)케어’, 즉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형태다.
건강한 고령자가 인근의 치매 환자 고령자를 정기적으로 돌보는 이 모델은
공공 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과연 노노(老老)케어는 치매 간병이라는 고강도 돌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치매 간병의 구조적 사각지대를 짚고,
노노(老老)케어가 현재 어떻게 이 공백을 채우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치매 간병이 놓이는 구조적 사각지대
치매 간병은 특수한 형태의 돌봄이다.
치매 환자는 스스로의 증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간병자에게는 상시적인 감정 소진, 수면 부족, 상해 위험이 동반된다.
그렇기에 단순한 정서적 지원을 넘어서,
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전일제 간병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돌봄이 안정적으로 제공되기는 어렵다.
공공 간병 인력은 치매 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며,
가족이 직접 간병을 맡는 경우에도 경제적 부담과 감정 노동의 누적으로
돌봄의 지속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게다가 치매 환자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초기 증상이 모호하거나, 등급 심사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정부의 방문요양 서비스조차 받을 수 없다.
이 경우, 간병이 필요한데도 아무런 제도적 지원이 없는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치매 간병은 ‘가족의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비공식적이며 불안정한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경우에서,
또 다른 고령자, 즉 이웃 어르신이나 친구, 배우자가
직접 돌봄을 수행하는 노노(老老)케어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노노(老老)케어는 치매 간병을 어떻게 메우고 있는가
현재 일부 지자체는 노노케어를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운영하고 있다.
건강한 70대 고령자를 선발해,
동일 지역 내 고위험 고령자 가정을 주 2~3회 방문하도록 하는 구조다.
이들은 식사 확인, 약 복용 체크, 안부 인사, 말벗 역할 등
기본적인 정서 돌봄과 일상 확인을 수행한다.
치매 초기 환자나 경증 환자에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단절된 외부 접촉 속에서 생기는 고립감을 완화하고,
응급상황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치매 동행 지원단’ 같은 시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육을 이수한 노노케어 활동자가
치매 환자 가정에 방문해 대화 자극, 손 운동, 놀이치료 같은
비약물적 접근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주로 정서적 보완과 간접 관찰 중심이며,
실질적인 간병 부담을 덜기에는 한계가 있다.
치매 환자의 배변, 폭력적 반응, 탈출 위험 같은
중증 케이스에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즉, 노노(老老)케어는 치매 간병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 간병의 공백을 하루 몇 시간이라도 메우고,
가족 간병자에게 일시적 휴식을 제공하며,
응급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1차 돌봄 필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노노(老老)케어의 치매 대응 한계와 윤리적 고민
노노(老老)케어는 복지의 새로운 실험이지만,
돌보는 이도 고령자라는 점에서 위험 구조를 안고 있다.
간병자는 체력적으로 쉽게 지치고,
치매 환자의 돌발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도 제한적이다.
게다가 노노케어 활동자 대부분은
전문 훈련 없이 간단한 기초 교육만을 받은 상태다.
치매 환자의 응급 대처, 감정 조절, 의사소통 기술 없이
돌봄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간병자와 환자 모두에게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윤리적 문제도 있다.
만약 치매 환자가 예기치 않은 행동으로
노노케어 활동자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금전적 피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현행 시스템은 그에 대한 명확한 안전 장치가 없다.
보험은 일부 지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감정 소진이나 심리적 불안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도 부족하다.
결국 노노(老老)케어는 의미 있는 모델이지만,
그 지속 가능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보완 없이는
위험한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정책: 간병의 짐을 나누는 구조 설계
노노(老老)케어가 치매 간병 사각지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제도’라는 상징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첫째, 치매 전용 노노(老老)케어 교육과정 개발이 필요하다.
단순한 방문 활동이 아니라,
치매 환자의 특성과 응급 대처, 언어 자극, 정서 반응에 대한
심화 교육을 정기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둘째, 활동자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심리 상담과 휴식을 병행할 수 있도록
간병자 복지권을 명시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치매 돌봄 활동자에게는
전담 코디네이터를 통한 상시 지원 체계가 가동되어야 하며,
의료·보건·사회복지기관과의 연계가 필수다.
넷째, 장기적으로는
지역 단위 치매 커뮤니티케어 시스템 안에서
노노(老老)케어가 일시적 지원자, 예방자, 연계자의 역할을 하도록
위치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치매 간병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이고,
노노(老老)케어는 그것을 함께 나누기 위한
‘사회적 돌봄 실험’이다.
그 실험이 성공하려면, 그만큼 정교하고
현실적인 제도 설계가 따라야 한다.
치매 시대, 돌봄을 혼자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치매는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의 돌봄 구조를 시험하는 문제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고령자들이
스스로도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다른 치매 고령자를 돌보고 있다.
노노(老老)케어는
치매 간병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사회적 자구책이자,
지역 돌봄 모델의 가능성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려면,
정책과 제도는 이 구조에 대한 정직한 진단과 보호 설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치매를 함께 돌보는 사회.
그 사회는 돌보는 사람 역시 지치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사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