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노(老老)케어 정책 방향 제안
고령사회, 복지 사각지대는 더 깊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기며,
고령자를 위한 복지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 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복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의 확산이다.
제도의 문턱이 너무 높거나,
정보 접근이 어려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고령자들이 많다.
특히 가족이 없거나, 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고령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이들은
사실상 홀로 돌봄을 감당하는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바로 노노(老老)케어, 즉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구조다.
처음엔 공동체적 돌봄 모델로 주목받았지만,
제도적 뒷받침 없이 자발성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노(老老)케어 역시 또 다른 복지 사각지대를 재생산할 우려가 있다.
이 글에서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노노(老老)케어를 어떻게 설계하고 제도화해야 하는지를 제안하며,
공공 복지 시스템이 이 구조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복지 사각지대와 노노(老老)케어가 만나는 지점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은
단순히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국가나 지자체가 마련한 제도와 실제 삶에서 필요한 돌봄 수요 사이의 간극,
어긋남에서 생겨나는 구조적 문제를 의미하죠.
특히 고령자 복지 영역에서 이 사각지대는
더 복합적이고 고착화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지 못한 고령자들입니다.
이들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고 있지만,
법정 등급 심사 기준에는 미치지 못해
방문요양이나 돌봄 서비스를 전혀 이용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자녀가 있지만 실제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자녀가 있으니 복지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공식적인 지원에서 제외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저소득, 저학력, 그리고 디지털 기기 활용이 어려운 고령자일수록
복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고,
신청 절차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결국 이들은 복지 제도를 활용하지 못한 채,
스스로 돌봄을 감당하거나
또 다른 고령자에게 의지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노노(老老)케어’라는 구조와 마주하게 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노노(老老)케어는 따뜻한 공동체 연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도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령자들이 스스로 만든
비공식적이고 자구적인 돌봄 구조라는
사회적 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의 양쪽 당사자
즉 돌봄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입니다.
둘 다 위험하고, 둘 다 취약합니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된다면
돌봄 제공자와 수혜자 모두가
동시에 더 깊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노(老老)케어의 제도화 필요성과 현재 정책의 한계
노노(老老)케어는 일회성 활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복지 전략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정책 구조에서는 그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일부 지자체와 보건복지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하나로 ‘노노케어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은 비교적 건강한 고령자를 선발해,
거주지 인근의 고위험 고령자 가정을 주 2~3회 방문하도록 구성된다.
활동자는 간단한 교육을 받고, 월 20만 원 내외의 수당을 받는다.
문제는 이 정책이 일자리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노노(老老)케어는 ‘일할 수 있는 고령자’만 참여할 수 있으며,
실제로 가장 치열하게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고령 부부나
가족 간병자는 제도 밖에 남게 된다.
또한 노노(老老)케어 활동자에 대한 보호장치도 미비하다.
활동 중 사고가 발생하거나,
심리적 피로가 누적되어도
정기적인 상담이나 건강 점검, 보험 보장 등의 시스템은 부족하다.
따라서 지금의 노노(老老)케어 제도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는 범위도, 깊이도 부족하다.
보다 확장된 개념과 설계를 통해
이 구조를 공식 복지 체계로 통합시킬 필요가 있다.
정책 방향 제안 ①: 돌봄 대상자 중심에서 '돌봄 관계' 중심으로
기존 복지 정책은 수혜자 중심, 즉 누가 돌봄을 받느냐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노노(老老)케어 정책은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노노(老老)케어 활동자를 간병자 혹은 복지 서비스 제공자로만 규정하지 않고,
그들도 복지 대상자이자 돌봄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돌봄 제공자의 신체·정서·경제적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맞춤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단순한 1:1 매칭 구조에서 벗어나
돌봄 네트워크 단위 운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마을 단위에서 노노(老老)케어 활동자 5~10명이
복수의 고령자 가정과 연결되어
팀 단위로 돌봄을 분담하고,
정기적인 회의나 사례 공유를 통해
돌봄의 지속 가능성과 질을 함께 관리할 수 있다.
이처럼 돌봄을 개인의 선의가 아닌
사회적 관계로 확장하는 구조 설계는
복지 사각지대를 체계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정책 방향 제안 ②: 지역사회 기반과 통합 돌봄 시스템 연계
노노(老老)케어를 복지 사각지대 해소의 중심 축으로 삼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 돌봄 체계와 적극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먼저, 각 읍·면·동 단위에서
노노(老老)케어 활동자를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돌봄 관리자(Coordinator)’ 역할이 필요하다.
이들은 활동자와 수혜자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위기 상황을 조기에 감지하여
보건소, 복지관, 치매안심센터 등으로 연계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서 기능한다.
또한 활동자에게는
건강관리 프로그램, 디지털 기기 사용 교육,
응급상황 대응 훈련 등을 제공함으로써
단순한 정서지원에서 나아가
생활·건강 복합 돌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사회 내 돌봄 기관들, 예를 들어
방문간호, 응급안전알림, 독거노인 보호서비스와
노노(老老)케어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면
한 사람의 돌봄이 단절 없이 이어지고,
복지 사각지대 발생률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노(老老)케어가 특정 고령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함께 운영하고 지지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구조적 대안으로서의 노노(老老)케어
노노(老老)케어는 단지 고령자 간의 정서적 지원을 넘어서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구조적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일자리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공공 복지 시스템의 핵심 축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돌봄의 관계에 주목하고,
돌봄 제공자도 복지 대상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 돌봄 체계와의 연계를 통해
노노(老老)케어는 보다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돌봄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지금은 단지 ‘복지 확대’를 외칠 때가 아니라,
복지가 실제로 닿고 있는가,
그 안에 누구는 빠져 있는가를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고령자가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노노(老老)케어는 제도와 제도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돌봄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