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사각지대: 비공식 간병자에게 필요한 보호 장치는?
“제가 돌보지 않으면, 이 사람은 누가 돌보죠?”
2025년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돌봄은 더 이상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의 변화다.
병원 간병인, 요양보호사도 있지만
실제로 가장 많은 돌봄은 가족 내에서 이뤄지고 있고,
그중 다수는 고령의 가족이 또 다른 고령 가족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구조다.
그런데 이처럼 매일 돌봄을 감당하는 사람들,
가족 간병자, 고령 배우자, 딸·아들 간병인은
법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거의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비공식 간병자’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돌봄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비공식 간병자들의 현실을 살펴보고,
그들이 지치지 않고 돌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회가 지금 마련해야 할 보호 장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비공식 간병자란 누구일까?
비공식 간병자는 정부에 등록된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아닌,
가족 또는 지인의 돌봄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
- 75세 아내가 83세 남편의 치매를 돌보는 노노(老老)케어 구조
- 55세 자녀가 부모의 병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거주
- 자녀가 없는 고령 자매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고립 가정
공식 간병인이 아니기에
이들에게는 수당도, 휴식도, 건강검진도, 교육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식사, 위생, 병원 동행, 감정적 지지 등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제도에서 빠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가족이니까”라는 인식 때문이다.
복지 정책과 제도는 아직도 ‘돌봄을 받는 사람’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돌보는 사람’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책임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보호받지 못하는 간병자들이 겪는 3가지 고통
첫째, 건강이 무너진다
비공식 간병자 대부분은 중장년층 혹은 고령자다.
하지만 돌봄은 전혀 가볍지 않다.
대소변 처치, 체위 변경, 식사 준비, 약 챙기기, 밤샘 감시까지
육체적으로도 매우 고된 일이다.
특히 본인도 당뇨, 고혈압, 관절염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기 건강은 뒷전으로 밀리고,
자신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무너져간다.
둘째, 감정이 지친다
비공식 간병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건 심리적 고립이다.
매일 아픈 가족과만 시간을 보내며 대화 상대가 없고,
감정을 표현할 곳도 없다.
“화가 나도 죄책감이 들고,
울고 싶어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어요.”
이 말은 실제 간병 중인 고령자의 인터뷰 중 일부다.
우울, 무기력, 분노, 자책이 반복되며,
정신적 소진이 빠르게 진행된다.
셋째, 생계가 흔들린다
간병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거나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간병자는 본인의 노후 준비도 불가능해지고,
오히려 생계 위기에 빠지는 ‘간병 빈곤’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아무런 제도적 보상이 없다.
그냥 책임감 하나로 버티는 구조가 지금의 현실이다.
돌봄의 주체도 복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복지 정책은 대부분
돌봄을 ‘받는 사람’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노인장기요양보험도, 요양시설도, 기초연금도
모두 수혜자의 상태와 소득을 기준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돌보는 사람 역시 그만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의 건강, 감정, 경제 상황이 무너지면
돌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
“간병자도 복지 대상이다”
이 인식 전환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변화다.
돌봄은 헌신이 아니라 노동이다.
노동은 존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비공식 간병자를 위한 복지정책은
돌봄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투자다.
비공식 간병자를 위한 보호 장치, 지금 필요한 것들
그렇다면 어떤 제도부터 마련해야 할까?
실제 간병자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건 다음과 같다.
1. 간병자 등록제 도입
가족이 간병을 하고 있다면
지자체에 ‘비공식 간병자’로 등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등록을 통해 상담, 건강검진, 정보제공이 연계된다.
2. 정기 건강 및 심리검진
간병자를 대상으로 연 1~2회
건강검진과 심리상담을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
돌봄 소진을 조기에 파악하고
우울증, 무기력, 불안 상태를 완화할 수 있다.
3. 간병자 휴식 제도
일정 기간 간병을 한 경우,
단기적으로 대체 간병인을 파견하거나
요양시설 입소를 통해 간병자가 쉴 수 있는 휴식권이 필요하다.
4. 경제적 보상 및 수당 지급
장기간 간병을 수행한 사람에게는
간병 수당이나 세액 공제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이는 간병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첫걸음이다.
5. 간병자 교육 프로그램
비공식 간병자를 대상으로
기초 간호, 감정관리, 응급대응 교육을 실시하면
간병 부담을 줄이고 안전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돌보는 사람도 돌봄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간병자를 ‘헌신하는 사람’으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돌봄은 한 사람의 헌신으로 버틸 수 없는 무게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이유로
자신의 삶이 사라져 버리지 않으며,
존엄하게, 지치지 않고, 돌봄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
그것이 바로
돌봄 사회가 지속 가능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