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성과 노노(老老)케어: 돌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돌봄의 마지막 선은 존엄이어야 한다
“돌본다고요? 같이 늙어가는 거죠.”
이 말은 78세의 한 노인이 82세 치매 아내를 돌보며 한 말이다.
그는 매일같이 대소변을 치우고,
반복된 질문에 응답하고,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며,
어느새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삶을 잃고 있었다.
노노(老老)케어, 즉 고령자가 또 다른 고령자를 돌보는 이 구조는
202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매우 흔한 풍경이다.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었고,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 비중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족 내에서의 간병, 특히 배우자 간의 상호 돌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마주해야 한다.
“과연 지금의 노노(老老)케어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돌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존엄을 지키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이 글은 노노(老老)케어라는 구조 속에서
고령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엄을 잃고 있는지,
그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길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사회 전체가 어떤 전환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윤리적·제도적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존엄을 잃어가는 돌봄의 현장
준비되지 않은 돌봄,
특히 고령자가 또 다른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老老)케어의 경우
가장 숭고한 인간의 행위가 고통으로 전환되기 쉽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자율성이다.
돌봄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 선택, 일상을
전적으로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
배우자에게 “오늘 밥은 뭐야?” 대신
“밥 좀 줘”라고 말하는 일이 습관이 되고,
화장실조차 혼자 가지 못할 때,
존엄은 서서히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돌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본인 역시 건강이 취약하고,
지속적인 간병으로 인해
자신의 시간, 감정, 신체를 타인의 삶에 종속시키게 된다.
“나는 간병기계인가?”라는 자조,
“죽을 때까지 이러다 끝나는 건가?”라는 절망은
그들을 무너뜨린다.
특히 이러한 상황이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
존엄의 침해는 더욱 심각해진다.
간병을 ‘가족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는 사회는
고령자의 헌신을 보살핌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삼는다.
이처럼 현재의 노노케어 구조는
양쪽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앗아가고 있다.
이 구조 속에서 존엄은 ‘사치’가 아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기본권’이 된다.
왜 돌봄의 책임을 고령자 개인에게만 묻는가?
대한민국의 돌봄 정책은
노인장기요양보험, 방문요양 서비스, 재가복지 서비스 등
일정 부분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노노(老老)케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제도들이 돌봄 수요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돌봄의 부담은
가족, 특히 고령자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족 중심의 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나 자식이 돌보는 것이 도리이며,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둘째, 제도적 접근성 부족이다.
장기요양등급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정작 등급을 받아도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하여
간병에 필요한 시간과 노동을 대체할 수 없다는 현실이 있다.
셋째, 고령자 본인의 자기 희생 성향도 원인이다.
“내가 이 사람을 안 돌보면 누가 돌보겠어”라는 인식은
제도 밖에서 스스로 돌봄을 감당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완전한 소진이다.
넷째, 사회가 ‘가족 간 돌봄’을 공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과 정책은 여전히 시설 돌봄, 취약계층 돌봄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고,
‘고령 배우자 간 돌봄’이라는 사각지대는
제도 설계 자체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는 묻게 된다.
“왜 돌봄의 책임을 이토록 오랫동안,
아무도 대신하지 않는가?”
국가와 사회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노노케어가 사회적 구조의 산물이라면,
그 구조를 바꾸는 일은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다.
이제는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간병자도 복지 대상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복지 제도는 돌봄을 받는 사람만을 수혜자로 보았다.
하지만 노노(老老)케어 상황에서는
돌보는 고령자 역시 피해자이며, 복지 서비스의 대상자다.
따라서 간병자에게도
정기 건강검진, 심리상담, 돌봄휴식권, 수당 등의
정식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가족 내 돌봄을 공식 제도와 연결하는 통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배우자 돌봄을 일정 시간 이상 수행한 경우
간병 수당을 지급하거나,
공공기관에서 간헐적으로 대체 간병인을 파견해
돌봄 부담을 분산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노노(老老)케어 실태를 공공 데이터로 수집하고 연구해야 한다.
현재는 고령자 간 돌봄 실태에 대한 통계가 부족하고,
그에 따라 정책 설계도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공식 돌봄 실태조사’,
‘고령 간병자 건강 위험군 분석’,
‘간병 피로도 측정 지표 개발’ 등을 통해
현장의 데이터를 제도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돌봄을 ‘공공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
의료, 교육, 교통처럼
돌봄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필수 자원이다.
따라서 더 이상 개인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제공하고 조율하는 공공 서비스로 전환해야 한다.
존엄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돌봄의 원칙
노노(老老)케어가 더 이상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돌봄 정책 전반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 전환은 단순히 제도 확대가 아니라,
‘존엄’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는 접근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 번째 원칙은 자율성의 존중이다.
돌봄 대상자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어야 하며,
돌봄 제공자 역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나의 시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상호 돌봄 구조의 공식화이다.
고령자가 돌보는 것을 ‘비공식 활동’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돌봄 참여’로 규정해야 하며,
그에 따른 교육, 보상, 보호 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 인정이다.
간병은 단순한 가족 의무가 아니라
시간, 감정, 신체를 소진하는 고도의 노동이다.
따라서 이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고,
사회적으로도 존중받는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네 번째는 사회적 연대의 회복이다.
돌봄은 더 이상 가족만의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웃, 지역사회, 커뮤니티, 공공기관이
함께 나누고 함께 연결되는 시스템 안에서
비로소 존엄한 돌봄이 가능해진다.
인간답게 늙고, 인간답게 돌보는 사회를 위하여
노노케어는 고령사회가 우리에게 던진 윤리적 질문이다.
“당신은, 돌봄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당신은, 인간다운 노후를 위해 어떤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돌봄은 누군가의 헌신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는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는 묻지 말아야 한다.
“누가 돌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그리고 대답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돌보겠다”고.
그것이 존엄한 삶의 조건이고,
존엄한 사회의 약속이기 때문이다.